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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책] 코토바 됸쥬, ‘로파이’


입력 2022.01.17 14:01 수정 2022.01.17 10:43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로파이'처럼 내 음악도 누군가에 같이 가라앉는 존재 되길"

2019년 기준, 성인의 1년 독서량은 6권밖에 되지 않습니다. 2달에 겨우 1권을 읽는 셈입니다. 이에 스타들이 직접 북큐레이터가 되어 책을 추천하고, 대중의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매개체로 나섭니다. 큐레이션 서점을 보면, 보통 책방지기의 취향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스타의 책’ 코너를 통해 스타들의 큐레이션 속에 묻어나는 취향과 관심사를 찾아보는 재미도 함께 느끼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문학과지성사, 본인 제공

◆오늘의 큐레이터 가수 됸쥬(DyoN Joo)


끝나지 않는 밤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됸쥬는 첫 싱글 ‘아이 컷 더 뱅즈’(I Cut the Bangs)로 데뷔 후 ‘변명’(feat. 이상의날개)으로 스포티파이에서 주목해야 할 한국 인디 음악 50선에 선정되었다. 인생 고통의 아이콘이라는 별명과 함께 호소력 짙은 목소리, 서늘한 사운드로 불안과 슬픔을 연주한다.


현재는 2019년 첫 앨범 ‘언어의 형태’와 함께 등장한 밴드 코토바(cotoba)에서 활동하며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 후보, 네이버 온스테이지 2.0 유튜브 조회 수 70만 회, K-인디차트 1위 등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정교하게 계산된 다이내믹한 박자와 뛰어난 연주력, 아름다운 멜로디로 전 세계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에는 스튜디오 라이브 영상과 함께 원테이크로 녹음한 음원 ‘계산된 자유’를 발매했다.


◆오늘의 책 ‘로파이’(Lo-fi) | 강성은 | 문학과지성사


◆‘로파이’는


강성은의 세번째 시집 ‘로파이’는 기존에 작가가 보여주었던 초현실적 상상력을 뒤틀어 현실 세계를 내파하는, 미세한 균열을 통과해 자신만의 불가해한 시공간을 탄생시키는 데 이르렀다. ‘저음질’을 뜻하는 음향 용어에 걸맞게 독자들을 한순간에 정체불명의, 나직하고 깊은, 확신이 불가능한 시공간으로 데려다놓는다.


저자의 시를 읽는 일은 이편의 세계에서 저편의 세계로 건너가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안락하게 누려오던 현실 세계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감각을 선사한다. 이러한 경험은 모리스 블랑쇼가 정의한 문학처럼 읽는 존재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도록 이끌어 우리가 새삼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게 만든다. 세계에 대한 확신을 걷어내야만 비로소 가능한 삶으로 순식간에 독자의 위치를 옮겨다 놓는 것이다. 그 위치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이거나 영면 이후의 시공간이기도 하고, 현실도 꿈도 아닌 지점이거나 환상에서 깨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의 내면과 현실 세계, 그리고 시인이 고유하게 구축한 ‘어떤 세계’까지 한순간에 감각하는 경험은 강성은의 시를 따라 읽는 독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황홀한 시적 경험이다.


◆왜 ‘로파이’를 추천하냐면


“쓸쓸하다는 말로도, 슬프다는 말로도, 눈이 내리는 어둡고 먼 곳에서 혼자 오래 있었다는 말로도 다 풀어낼 수 없는 어떠한 것들을 각자의 안에 가지고 계시나요?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것들을 언어로 구성해 내는 것에 오래 고민하는 분이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특정한 가상의 광경이 반복되는 분이 계신가요?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현상과 닮은 책입니다. 48편의 시 중에서 어떤 글이 가장 당신의 마음과 비슷한지 궁금합니다.”


◆오늘의 밑줄


그는 입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말 때문에 어느 날 밤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말들이 자갈처럼 무거워져서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고 매일매일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고 했다 삼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가라앉고 있다고 이건 꿈이 분명하다고 그런데 이렇게 긴 꿈은 처음이라고 (중략) 그리고 당신이 내가 삼 년 만에 처음 본 사람인데 당신도 이 꿈의 마지막을 알 수 없겠지요, 라고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자갈이 목까지 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더 아래로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 ‘저지대’ 中 (p.46)


“저는 종종 입안에 흙이 꽉 차있는 꿈을 꿉니다. 안에서 밀어내도 손으로 파내도 입 안 가득 들어차있는 습기 찬 밀도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꿈속, 깨어나서도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그 자리를 채울 단어를 찾을 수가 없어 입속 깊이 가라앉는 시간. 또 자주 먼 곳에서부터 바람이 부는 들판에 혼자 서 있는 밤을 생각합니다. 풀숲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벌판, 어느 순간 저의 팔위에서도 풀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손으로 털어내도 다시 자라나고 자라나다 어느새 풀의 길은 팔을 지나 목까지 올라옵니다. 불어오는 바람과 우수수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들판, 그 한복판에서 선 채 몸에서 자라나는 풀을 뜯고 또 뜯어내는 밤.”


“이 시를 읽었을 때 제 안에서 돌고 있던 그 꿈과 광경들이 다른 이의 꿈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너무 외롭고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더 아래로 깊이 가라앉고 있을 때 찾아오는 위안. 제가 이 시에서 느낀 감정처럼, 제가 만드는 음악들도 누군가에게 같이 깊이 가라앉는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됸쥬의 한줄 평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도 아닌 슬픔도 아닌 적막도 아닌 끝나지 않는 꿈 안에서 살아가는 현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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