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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시인(詩人)보다는 강릉사투리 채집가 김인기씨”


입력 2004.12.08 08:33 수정 2004.12.08 08:33       

15년동안 강릉사투리에 메달린 집념으로 ´강릉예술인상´ 수상



시인(詩人)의 얼굴과 외모는 어딘가 모르게 선하고 순수한 감을 느끼는 것일까? 2004년도 강릉예총(회장 정태환)의 ‘제11회 강릉예술인상’ 본상을 수상하는 김인기(56)씨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풍기는 인상이다.

지난 6일 강릉예술인상 시상식에 앞서 그의 근무지가 있는 강릉상수도사업소 ‘교동배수지’를 찾았을 때 혼자 근무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때부터 동시, 문학세계로 등단

초등학교때부터 동시(童詩)를 쓰고 21~22세때까지 시에 대한 습작(習作)을 계속해 1991년 월간 ‘문학세계’에서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하게 되어 30여년의 세월을 시와 함께 지냈다고 했다.

그는 3권의 시집을 발간했는 데 ‘자작나무밭 구십리, ’머나먼 여인천국‘,’산적이 되고 싶소‘라고 소개 했는 데 2권의 시집제목이 특이하다고 하자 “’머나 먼 여인천국’ 은 여신 나체 세상에 남성들이 들어오고자 하자 남자의 심볼을 제거해 힘의 밸런스를 맞추고자 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 것”이라는 시상(詩想)을 소개 했다.

또한 ‘산적이 되고 싶소’는 “세상이 어지러워 차라리 산적이 돼 임금님의 수랏상까지 뒤엎고 싶어 하는 세태를 비유, 풍자한 시”라고 밝혔다.

시는 어떻게, 어떤 때 하느냐의 질문에 “책을 많이 보고 습작을 계속하며, 영감이 더 올랐을 때는 단숨에 쓴다”라고 하면서 두명의 처남들이 시내에서 서점을 해 돈 들이지 않고 책을 많이 읽은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문인협회 일과 계속된 시작(詩作)생활,

문단에 등단한 1991년부터 문인협회에 몸담아 시인들과 교류하면서 창작의욕을 키웠으며, 2000년부터는 부지부장을 맡아 시낭송, 문학기행, 연간지(회지)를 발행하고 ‘문학세계’, ‘월간문학’, 문학공간‘ 등에 매년 3~5편의 시를 발표한다고 했다.

그의 시작과 시세계를 듣고 있었으나 예술인상을 받게 된 동기가 여느 시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조금 민망한 질문을 했더니 슬그머니 두툼한 책한권을 꺼내 놓았다.



수상공로는 강릉 사투리 채집, 편찬으로

그가 내놓은 것은 1,650여쪽에 달하는 ‘강릉방언총람(江陵方言總攬‘이라는 책이 였는 데 강릉지방의 사투리를 채집해 집대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는 데
그의 이번 수상이 시작(詩作)보다는 이런 공로가 인정되어 수상하게 된 것이 수긍이 갔다.

1988년도부터 북쪽은 주문진, 남쪽은 옥계, 서쪽은 임계와 대관령넘어 진부까지를 강릉지역 사투리의 분포지역으로 보고 휴무일(그는 청원경찰로 재직해 하루근무 다음날 휴무를 계속)에는 작은 오토바이에 녹음기를 갖고 술과 고기를 싣고 15년동안 사투리 채집에 몰두했다고 했다.

그동안 채집한 사투리를 6천여매의 원고로 정리해 지난해 12월 ‘강릉방언총람’으로 세상에 내놓는 출판기념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의 사투리 채집에 대한 집념과 열정을 인정해 2천여만원 제작비중에 강릉시가 1천만원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자비로 충당했는 데 다행히 출판기념회에서 호응이 좋아 1천만원은 쉽게 상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투리 채집위해 15년동안 갖은 고생을 다해

사투리를 채집갈 때는 꼭 술과, 안부를 준비해 갔었다며 “주민들에게 분위기를 살릴 수 있어 사투리 채집이 쉽게 되었다”면서 같이 술을 나누다 술기운에 눈,밭두렁과 오솔길에서 숱하게 가벼운 사고도 당했다고 했다.

“한번을 70대 노인의 바람피우는 얘기를 이웃주민이 듣고 부인에게 고자질해 부부싸움을 일으키게 했다”는 애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어떤 때는 간첩으로 몰려 곤혹을 당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럼 그 많은 나날을 사투리를 찾아 다닐려면 비용도 솔찬히 들었지 않겠느냐에 “용돈을 아끼면서 솔직히 부인 모르게 상여금, 수당 등에서 조금씩 떼어 사용했다”며 혼자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15년동안 휴무일에 사투리 채집한다고 나서는 남편에 대해 부인(조경자. 51)은 어떠했는냐는 물음에 “사투리는 씨머거리 스럽다(강릉사투리로 지겹다)”라고 하면서 냉대했으나 출판기념회때에는 노력을 인정해 주었다고 했다.

그가 펴낸 강릉방언총람에는 다른 방언집에는 포준어와 방언만 소개했는 데 그는 풍부한 용례와 어원 및 용도를 밝힌 것이 특징이였으며, 사투리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집념이 강했음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이런 그의 열정을 인정해 강릉예술인상을 수상한 것이라 확신이 되었다.



크고 작은 사고로 인해 휴유증도 겪고 있어

15년동안 쉼없이 농촌의 산야를 섭렵하고 다니면서 그 노력의 결실을 보기는 했지만 크고 작은 사고 등이 겹쳐 언어장애로 인해 계속 약을 복용하고 있고 앞으로 1년정도는 더 치료를 해야 한다고 조금은 허탈함을 털어 놓기도 했다.

맏딸이 초등학교에는 전국동시대회에서 장원까지 했는 데 어느날 갑자기 다념했다고 하면서 “딸 셋의 자녀는 문학에는 별관심이 없는 것 같다”면서 시를 쓴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좋은 시를 쓰자면 독서를 많이 해야 하고 습작을 많이 해야 한다”고 지론을 들으면서 그가 평소 아끼는 시 두편을 소개하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옥수수]

초록 저고리 고름 풉니다
숨은 치마끈 당깁니다

벗깁니다
한 겹
두 겹

하이얀 속적삼 헤칩니다.
볏겨내립니다

수줍고
부끄러운 미소에
발 드리운 구슬 이 고운
향기로운 몸뚱아리 쓰다듬습니다.


[열 쇠]

철조망 둘러쳐진 북녀여
미리내 가로 막힌 직녀여
유배지의 歲馬로 돌아온 탕아에
두드려도 돌아앉아 빗장 지른 문이여
불러도 메아리 거두는 도아리 튼 가슴이여
수절 붉은 미망에 서러운 애증이느니
그대 옷고름 그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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