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발 곡물 수출 금지로 한국도 악영향
국내 식품 기업들도 위기 상황 직면
“장기화 될 경우 물가상승으로 직결될 것”
정부 차원의 신속 대응책 마련 필요
국내 식품·외식업계가 잇딴 악재로 휘청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해상 운송 차질로 제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타격까지 가시화 되고 있어서다.
장기화 될 경우 기업 차원의 치명적인 손해는 물론 소비자 체감 물가상승도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말부터 인플레이션 문제가 최대 화두인 가운데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발생하며 업계 분위기가 더욱 어두워졌다.
현재 러시아 침공 사태로 현지에 진출한 국내 식품·외식 기업들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원재료 수급 불안, 루블화 가치 추락, 현지 경기침체 등에 따른 수익성 하락 우려가 커진 탓이다.
우리 업체들은 아직 러시아 제재에 따른 리스크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후폭풍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향후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재료 수급 불안과 기업활동 위축 등 다양한 부정 요인이 발생할 수 있어 긴장하는 분위기다.
국내 식품 기업 중에는 오리온, 롯데제과, 팔도, 롯데칠성음료 등이 러시아 현지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리온은 초코파이, 팔도는 도시락, 롯데칠성은 밀키스 등 각각 자사 대표 제품을 앞세워 러시아 식품 시장을 빠르게 공략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예기치 못 한 리스크로 고민이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오리온은 초코파이의 인기와 제품 다각화에 힘입어 지난해 러시아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당장 큰 타격은 없지만 이번 사태로 언제든 제동이 걸릴 수도 있어 불안감이 적지 않다.
오리온 관계자는 “러시아 법인은 현지 생산 및 판매 중심이라 현재 큰 문제는 없다”면서도 “원부재료 재고는 2개월분 가량 확보돼 있지만, 일부 수입 원료의 경우 공급 부족에 대비해 러시아 현지 업체도 물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차원의 어려움뿐 아니라 스태그플레이션에 따른 우려도 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올해 물가상승과 함께 소비 위축으로 저성장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밀 최대 수출국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세계 밀과 보리 수출량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중에서도 우크라이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흑토지대 위에 있어 ‘유럽의 빵공장’이라고 불릴만큼 곡물을 풍부하게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다. 우리나라는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거나 수입이 원할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생산비용이 올라가고, 궁극적으로 소비자 가격의 상승 역시 부추길수 있다. 밀가루를 비롯해 라면과 빵까지 도미노 가격 인상 압박이 현실화 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 전쟁으로 전세계 밀가격은 72% 급등했다. 앞으로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주요 곡물과 일부 육규 제품의 수출을 금지한 상태다. 러시아 역시 오는 6월 말까지 수출을 전면 금지하면서 곡물 수급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미 두 나라의 생산 비중이 높은 수산물 가격은 치솟고 있다. 노르웨이산 연어는 주로 러시아 상공을 경유하는 항공편으로 들여오는데 러시아 영공 폐쇄로 우회 항로를 이용하다 보니 운임비가 증가하면서 가격에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
연어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미 일부 식당에서는 연어가 들어가는 메뉴 판매를 중단하거나 가격을 올리고 있다. 대형마트 역시 장기 계약한 물량이 있는 만큼 당장 물량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가격 안정을 위해 노르웨이 외에 다양한 대체 산지를 찾고 있다.
이 밖에도 전 세계 물류대란이 국내 식품·외식 업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원가상승과 물류난 이중고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부재해 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식품기업들은 미국 등 주요 교역국에서 물류대란이 벌어지면서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콩, 밀, 팜유 등 식품 제조를 위해 필요한 주요 원재료를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데다 수출이 실적에 미치는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식업계는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애를 먹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한차례 감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맥도날드의 경우 또다시 수급 불안정으로 매장 운영에 일부 차질을 빚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상 운송이 불안정해지면서 감자를 국내로 들여오지 못하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 역시 최근 원두 수급 차질을 빚었다. 업계에 따르면 스타벅스는 이달 초부터 일부 원두에 대한 매장 발주를 일시 중단했다. 다만 스타벅스 측은 이번 주 중 원두 물량이 풀리면 공급이 원활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새정부의 대처가 중요하다고 바라보고 있다. 이런 현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다. 톱니바퀴 같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어느 한 곳이 끊길 경우, 특정 산업 전체가 멈춰 설 수 있다는 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일침한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당장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하다. 전반적으로 소비심리가 오르고 경제가 반등을 하려던 찰나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또다른 물가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러한 다양한 경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새정부의 과제가 될 듯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