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료비, 배달비, 인건비 인상에 가격 인상 압박 심화
외식가격공표제 무용론…지난달 39개 조사 대상 전 품목 인상
“원재료 비용 오른 걸 생각하면 판매 가격 인상이 당연하지만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 씀씀이도 줄어 매출이 더욱 떨어질까 우려된다. 가격을 올리면 올린다고 비난 받고 그렇다고 유지하자니 당장 버티지 못할 것 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치솟고 있는 국제곡물가격 여파로 외식업계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비용 증가로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대부분 외식 품목이 한 차례 가격을 올렸지만, 반년도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수익성 악화 우려에 직면한 탓이다. 가격을 또 올리자니 매출이 떨어질까 두렵고 유지하자니 폐업을 피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였다.
14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물가는 1년 전보다 6.6% 올랐다. 이는 1998년 4월 이후 약 24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품목별로 보면 갈비탕, 생선회, 자장면, 치킨, 김밥, 라면 등 39개 조사 대상 품목이 모두 올랐다.
작년부터 계속돼온 국제곡물가 등 원재료비 상승에 배달비용, 인건비, 임대료 등 각종 고정비용 인상이 주요 원인이다.
이미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대부분 외식업체들이 도미노식 가격인상을 단행했지만 몇 달 새 급격하게 오른 원재료 비용 탓에 다시 한 번 가격 인상을 놓고 고민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외식물가 인상을 막기 위해 지난 2월부터 외식 프랜차이즈 주요 메뉴 가격을 공개하는 외식가격공표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정부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외식물가는 치솟고 있다.
매출 절반 차지하는 원재료비 인상에 배달비용까지…“감내할 수준 넘었다”
업계에서는 원재료비 비중이 큰 만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른 서비스 업종에 비해 외식업종은 원재료비 비중이 전체 매출의 40~50%를 차지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밀가루, 식용유 등 필수 원자재 품목은 물론 김치, 통조림햄, 두부 같은 주요 가공식품 가격까지 줄줄이 오르면서 수익성 악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배달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기존에 없던 배달앱 수수료와 배달비용이 새롭게 추가된 만큼 내부적으로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그동안 저녁장사를 못하게 되면서 치킨 배달로 방향을 틀었는데 최근 들어 식용유, 밀가루 같은 재료비용이 적어도 30~40%는 오른 것 같다”면서 “배달비용 아끼겠다고 가족들까지 동원해서 하는데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게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은 본사에서 대량으로 사서 공급하니까 그나마도 낫지만 우리 같은 개인 업장은 가격 인상 영향을 바로 받을 수 밖에 없다”며 “2년간은 코로나로 장사를 못하게 해서 힘들었지만 이제는 장사는 하지만 할수록 빚만 늘어나게 생겼다”고 전했다.
‘식탁물가 물가 인상 → 소비심리 위축’ 악순환 고리 형성
외식뿐만 아니라 채소, 과일, 육류 같은 신선식품 등 장바구니 물가도 덩달아 뛰면서 소비심리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식비 지출이 늘어난 만큼 집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출 부담이 큰 외식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박모씨는 “사실상 먹거리 가격이 다 오르다 보니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할인율이 높은 온라인몰을 이용하거나 각종 쿠폰 등을 활용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지출이 큰 외식도 줄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도 가맹점의 가격 인상 요구에 진땀을 빼고 있다.
원자재 조달 비용이 늘면서 가맹점에 공급하는 필수품목 가격도 인상된 만큼 판매가도 올려야 한다는 게 가맹점주들의 주장이다. 가맹점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판매가 인상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최근 1년 내 가격 인상을 단행한 만큼 여론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업계 한 관계자는 “가맹점주 간담회 같은 자리에 가보면 가장 많은 요구가 가격 인상과 필수품목 가격을 낮춰달라는 것인데 본사 입장에서는 둘 다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전했다.
그는 또 “워낙 국내에 많은 외식 브랜드가 있고 최근엔 밀키트 경쟁도 치열해진 만큼 소비자로서는 대체제가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이라며 “가격 인상을 단행해도 첫 번째라는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누구 하나 총대를 메면 이후로는 또 도미노식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