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디케의 눈물 ⑭] "이혼 주민, 마을 제사 오면 부정 탄다"…명예훼손 아닌 이유


입력 2022.06.02 05:14 수정 2022.07.22 22:30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1·2심 '명예훼손'…대법원 '단순한 의견 표현'으로 판단

법조계 "의견의 범주로 포함…명예훼손 판단 근거 추가"

"법원, 사실적시와 의견표명의 기준 제시해야…사실적시, 비난목적 아니면 더 길게 설명할 필요"

"국제인권기구, 불명확성 때문에 명예훼손 형사사건으로 다루지 말라고 권고"

대법원. ⓒ데일리안 DB

이혼한 주민을 두고 "마을 제사에 참여하면 부정 탄다"고 한 지역 공무원의 말이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는 단순한 의견 표현에 불과한 만큼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 판결의 취지라면서, 하나의 기준이 추가된 만큼 앞으로 유사한 명예훼손 소송 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30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지역 공무원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하급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A씨는 2019년 1월께 주민자치위원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혼한 B씨가 당산제에 참여해 사람들 사이에 안 좋게 평가하는 말이 많았다”고 주장해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또한 이튿날 다른 주민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혼했다는 사람이 왜 (제사에) 왔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1심·2심은 A씨의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이혼한 사람이 왜 왔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말을 두고 “객관적인 사실에 더해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 또는 비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지적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반면 대법원은 “B씨의 참석에 대한 부정적 가치 판단이나 평가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고 봐야 한다”며 단순한 의견 표현이라고 판결했다.


법조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명예훼손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법무법인 미션의 김성훈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법원이) 명예훼손에서 구성요건 해당성을 판단할 때 사실 적시를 두고 사실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또 단순 의견이라는 평가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법원 판단의 경우 '이혼한 사람이 제사에 참여하면 재수 없다'는 말은 의견의 범주로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이번 대법원 판단이 앞으로 유사한 명예훼손 소송 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나의 기준이 추가됐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조계는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 또는 단순한 의견표명의 기준이 되는 재판이 진행되면 이를 충분히 설명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률사무소 화랑의 이지훈 변호사는 우서 "우리 사회에선 '이혼은 부정적'이라는 전제 하에 '이혼한 사람이 참여하는 제사는 부정탄다'는 발언이 비난에 포함된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이혼만으로 부정적인 가치가 투영된 표현이 아니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적시와 의견표명의 기준을 제시해줘야 할 때가 온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적 맥락을 보면 납득 가능하지만, 일반인들은 판결문만 보게 된다. 사실적시를 비난할 목적이 없다고 판단하면 더 길게 설명해줘야 일반인들이 납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인권기구에서는 불명확성 때문에 오랫동안 명예훼손을 형사로 다루지 말라고 권고해 왔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사람에 대한 평판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평판이 훼손된다고 사람에 대해 신체적, 물리적 자유를 형사처벌로 제약할 수 있는 지를 놓고 비례성이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고 설명했다.

'디케의 눈물'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