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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역할 [이소희의 언팩]


입력 2022.06.13 07:00 수정 2022.06.13 05:11        이소희 기자 (aswith@dailian.co.kr)

절차적 정당성·투명성 확보 강조

같은 행위·다른 처분 지적에는 “종합적 판단”

새 정부 인선서 꼴찌로 밀려, 내부서도 뒤숭숭

공정거래위원회가 사회 불공정거래를 바로잡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질서 확립하는 등에 꼭 필요한 기관임은 모두가 인지하는 사실이다.


‘공정하고 신속한 사건 처리’와 ‘조사·심의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 확보’는 공정위 스스로가 표방한 공정거래 행정서비스 헌장에도 포함돼 있다.


지난주 공정위는 수년간 조사를 거쳐 심의를 마친 한-일 및 한-중항로 국내·외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해상운임 담합제재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공정위는 한~일 항로에서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76차례 운임을 합의한 15개 선사(14개 국적선사·1개 외국적선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800억원을 부과한다고 했고, 한~중 항로의 경우 2002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68차례 운임 합의가 이뤄진데 대해 27개 선사(16개 국적선사·11개 외국적선사)에 시정명령 조치를 내렸다.


앞서 올해 1월에는 한-동남아항로를 운행하는 컨테이너 선사들에는 해상운임 담합 건으로 1000억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 같은 시정명령과 과징금에 해운협회를 비롯한 선사들은 ‘국제관례와 법령에 반한 일방적인 제재’라면서 반반했고, 해양수산부 또한 ‘해운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선 넘은 제재’라면서 반박했다.


이 때문인지 이번 한-일·한-중 해상운임 담합제재 발표와 관련해서는 공정위도 요목조목 피해가지 못할 조사결과를 들이대며 그간의 조사와 심의과정에 대해 장문의 자료를 첨부해 브리핑하기도 했다.


특히 공정위는 해당 선사들이 기본운임의 최저 수준으로 설정하고 각종 부대운임을 도입·인상하는 식으로 수입을 늘렸다고 판단했으며, 이를 통해 부당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각자의 기존 거래처는 손대지 않는 방식으로 운임 경쟁을 제한했고, 합의된 운임을 받아들이지 않는 화주에 대해서는 대기업조차도 보복 조치를 감행했다고 봤으며, 무엇보다 자신들의 담합행위를 인지하고 증거까지 인멸하는 고의성이 드러났다며 제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번 조사가 공정위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공정위의 주장대로 한-일과 한-중 항로에서 선사들의 담합은 똑같은 행위와 방식으로 오랫동안 이뤄져 왔는데 처분은 확연히 달랐다.


물론 한-중 한로는 한-일 항로와는 달리 1993년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 간 운임 협정이 맺어졌고 매년 양국 간 해운회담이 개최돼 실제적으로 양 정부 간 공급량을 제한해 왔기 때문에 경쟁제한성이 있는 상태에서의 운임 담합으로 발생하는 경쟁제한 효과나 파급효과 등이 상대적으로 미미했다는 설명을 들며 ‘종합적인 판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선사들의 공동행위에는 차고 넘치는 증거가 확보된 이른바 ‘빼박 사건’이라는 응수다. 올 초와 달리 공정위의 ‘해운법’이 아닌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적극적 설명은 그간 언론 등에서의 해수부와 공정위의 갈등이나 엇박자로 보는 시선이 매우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날 브리핑에는 ‘같은 행위에 다른 처분’에 대한 질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만큼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한-중 항로의 종합적인 검토에 다른 외교적 사인이나 변수가 있었는지도 거듭 언급됐지만 답은 매번 같았다.


결론으로 보면 한-중 항로는 공급이 넘쳐 설사 담합을 했더라도 유지되기 힘든 구조이며 그로 인한 큰 이익이 없는 구조라는 것인데, 그렇다치면 선사들이 굳이 담합을 해야 할 이유도 없는 상황이지만 공정위 판단은 ‘그래도 담합행위는 있었다’라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공정위 수장 꼴찌 낙점에 내·외부 시선도 “밀린 거 아냐”

현재 공정위는 수장의 사의 표명은 있었지만 아직 후임 인선이 안 된 유일한 부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수없이 나온 공정위장 하마평에 매번 다른 인물이 거론되기를 반복하자 공정위 내부에서도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가뜩이나 이번 정부 들어 인수위 초기부터 공정위의 역할을 두고 ‘힘이 빠진 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는데 인선 또한 마지막까지 밀리다(?)보니 의사결정 공백 여부를 떠나 업무차질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새 정부 초기 내각이 주요 경제정책방향을 설정하는 등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이미 맘 떠난 위원장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그리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규제개혁을 통한 기업부담 완화와 자율규제 등을 강조한 새 정부의 방향성에 공정위 정책기조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공정위의 새 틀도 필요로 하고 있다.


그간 공정위가 주도해왔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제정 관련해서도 시대와 행태변화로 인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만 누가, 언제 등 시기와 주체를 놓고는 이견이 분분하다.


이에 공정위는 온플법은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고, 공정위는 자율규제의 도입과정 및 성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등을 설명하고 온플법 논의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는 해명도 내놓은 바 있다.


온플법 제정을 강하게 추진해오던 조성욱 위원장과 함께 이를 주도했던 신봉삼 공정위 사무처장도 사의를 표명해 온플법 제정은 사실상 폐기수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시장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국정과제를 뒷받침할 만한 최적의 인물 등용과 공정위 역할의 선명성에 좀 더 기대를 걸어본다.

이소희 기자 (aswit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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