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크라에 무기 지원하며
협상 우회 권유…아귀 안 맞아"
"러, '승리' 인정받으면 멈출 것"
전쟁범죄 여파로 용인 어려울 듯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정치·경제적 여파에 촉각을 기울이는 가운데 '출구전략' 모색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장기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데다 미국·러시아 역시 전쟁 '목표'와 '명분'을 두고 표류하고 있어, 관련국이 접점을 찾기까진 갈 길이 멀다는 관측이다.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한국냉전학회가 공동주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최종목표'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애초 우크라이나 지도부 망명을 고려했던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선전이 이어지자 '러시아 정권 약화' 등을 언급하며 180도 달라진 목소리를 냈다.
'확실한 최소목표'를 추구했던 초기와 달리 △대러시아 경제제재 도입 △독일의 협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결집 등의 '성과'가 잇따르자 '불확실한 최대목표'를 좇게 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19일자 사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최종목표가 확실치 않다고 꼬집었다. 국내외 정세를 고려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무한정 지속하기 어려운 만큼,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NYT에 직접 기고문을 보내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이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게 이 교수 지적이다.
이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협상에 의한 평화'를 대전제로 제시했다면서도 "관련 결정권은 우크라이나에 있다며 (공을) 넘겼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다 보니 우크라이나는 계속 전쟁을 한다"며 "(전쟁 최종)목표가 헷갈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며 에둘러 협상을 권하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푸틴, 내부 위기 돌파하려 전쟁"
목표가 불확실한 미국과 달리 러시아는 사실상 목표를 달성했지만, 전쟁을 매듭지을 '명분'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내 정치·경제적 불안 요소를 전쟁으로 덮어버리는 데 성공했지만, 뚜렷한 사후 대책은 없다는 평가다.
노경덕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푸틴 1~2기는 욕을 먹더라도 나름 민주주의 국가였다"면서도 "2011~12년 시작된 3기부터는 본격 독재였다. 당시 러시아 내부에선 반푸틴 시위도 있었다. 특히 '아람의 봄'이 러시아에게 반면교사가 됐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영향으로 내부 갈등이 첨예해지고, 내전 수준까지 확대될 경우 NATO가 개입해 혼란을 수습하는 사례들이 러시아의 경계심을 끌어올렸다는 의미다.
노 교수는 과거 러시아가 NATO 팽창에 대해 "그렇게 히스테릭하게 반응하지 않았다"며 "NATO 팽창과 정권 위협을 연계해보는 시점이 2011~2012년 즈음이다. 독재국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푸틴 정권 스스로 느끼는 정권불안감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적 여건 외에도 경제적 상황 역시 푸틴 정권을 압박하는 요인이었다고 평가했다. 노 교수는 "2010년까지 4~5%를 기록하던 러시아 성장률이 2011년부터 크게 둔화된다"며 "민심에 대한 두려움, 외부의 민주화 요구와 그에 따른 내전·시위 가능성, 그리고 그것을 NATO가 해결하는 전례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푸틴 정권에겐 취약함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권 내부 취약성 극복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노 교수는 "푸틴 정권이 목표를 이미 달성한 셈"이라며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80% 이상이다. 내적 안정감을 이룬 데 더해서 원래 분쟁지역이었던 돈바스,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회랑지대까지 군사적으로 확보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푸틴이 상징적 수준에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면 러시아는 더 이상 전쟁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푸틴의 상징적 전쟁 승리를 누군가 들어줘야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민간인 학살 등의 범죄 정황이 뚜렷해 국제사회가 푸틴 대통령의 '승리'를 인정해주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