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지금 아니면 전기요금 인상 적기 놓친다
kWh당 5원서 30원대까지 인상폭 스펙트럼 다양
과도한 요금 보호 신호시 전력수요 효율화 불가능
한국전력의 올해 영업손실 규모가 평균 20조~30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최근 정부가 요구한 한전의 자구노력은 재무위기를 해소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 해법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온다. 국제 에너지 쇼크가 발생하며 선진국들이 과감히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한국 정부도 전기요금을 더이상 '민감한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로 접근해 합리적인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전 경영진 성과급 반납?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
정부는 한전 재무상황 악화에 따른 강도높은 자구노력 필요성을 고려해 한전 기관장·감사·상임이사 성과급을 자율반납하도록 했다. 또 이에 앞서 한전은 출자 지분 및 부동산 매각과 해외 사업 구조조정 등으로 6조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자구 계획도 내놓았다.
한전 내부적으로는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한전 때리기'에만 골몰한다는 불만도 쏟아졌다. 연료비 급등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인상이 지연된 것이 적자를 낸 가장 큰 이유인데 이제 와서 책임을 한전의 방만 경영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한전 불만과 별개로 일련의 자구책을 다 합쳐도 적자를 메꾸기엔 역부족인 액수라는 점이 문제다. 한전 사장과 임원진이 받은 경영평가 성과급이 최대치로 잡아도 1억원대 초반인 점을 감안할 때 합산하면 많아야 수십억원에 불과하다.
한전은 올해 1분기 사상 최대인 7조7869억원의 적자에 이어 2분기에도 5조원이 넘는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적자 규모가 30조원대에 달한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정부가 한전에 요구한 자구 방안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크다.
SMP 상한제 도입 역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산업부는 지난 5월 24일 전력시장 긴급정산 상한가격 제도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 했다.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도매가에 사올 때 적용되는 SMP에 상한을 두겠다는 것이 핵심으로, 민간발전사의 수익으로 한전의 적자를 보전하는 형태다.
발전공기업은 추후 국가 지원에 의해 손실 보전이 가능하지만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이다. SMP 상한제가 도입되면 다수 민간 사업자들이 발전사업을 중단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尹정부, 전기요금 인상 더 이상 미룰 명분 없다"
전기요금 인상은 더 이상 '예민한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에너지 쇼크가 오는데도 마치 전기요금은 건드리지 않아야 할 '불문율'이 돼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이 유독 심각하다.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연료비 상승분을 반영해 전년 대비 12.3~68.5%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영국은 33.7%, 독일은 43.4%, 스페인은 무려 68.5% 인상률을 보였다. 영국은 올 하반기 추가 요금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다른 나라들은 30~50%씩 전기요금이 다 올랐는데 우리나라는 최근 5% 수준 오른 것인데 이걸 갖고 호들갑을 떠드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대체 무엇을 근거로 전기요금을 안 올려야 하는지 합리적인 명분을 갖고 말해야 할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우리나라는 석유가 나느냐, 가스가 나느냐"라며 "에너지 빈국이 전기요금을 동결하는 것은 결국 미래세대를 향해 고통을 전가하는 꼴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올해가 넘어가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 정부가 가진 전기요금 인상 부담은 탈원전, 에너지 전환 등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법은 가장 비싸게 만들어 놓고도 정작 요금은 전혀 인상하지 않은 지난 정부로부터 전가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현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금 인상하면 지난 정부 탓으로 보는 여론이 형성되지만 1년 이상 흐를 경우 요금 인상이 현 정부로부터 비롯됐다는 여론이 형성되며 단죄하는 여론이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러번 나누어 올려야" vs "자이언트스텝 밟아야"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지만 인상폭을 얼마만큼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정부는 한전의 요구대로 연료비 조정단가의 분기 조정폭을 연간 조정폭(±5원/kWh) 범위 내에서 조정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 3분기 조정단가를 ㎾h당 5원 인상했다.
전문가들은 현 제도 수정없이 조정단가를 연간 5원씩 여러 차례 나누어 인상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서 한전이 산업부에 요구한 33.8원이나 그에 준하는 수준을 한번에 올리는 '빅스텝' 혹은 '자이언트스텝'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주장을 내고 있다.
월 평균 350kWh 전기를 사용하는 4인가구를 기준으로 보면, 조정단가 5원 인상 시 전기요금은 1750원 오르고, 33.8원 인상 시 1만1830원 오르는 수준이다.
여러 차례 나누어 인상하자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연료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적 변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폭을 확대하는 방안은 고려해볼 수는 있겠으나 섣부르게 올렸다간 부작용도 큰 만큼 서서히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연료비 연동제에 의한 인상폭은 연간 5원(이번 3분기 인상률 4.62%)이 적정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노 연구위원은 "과거 사례를 보면 전기요금의 경우 정부가 인상이 너무 힘이 드니 한 번 올려놓으면 잘 안 내리는 경향이 있다"며 "쉽게 말해 유가가 반토막이 났다고 해서 연동되는 연료비도 반토막을 쳐서 내리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비해 한번에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5년간 에너지 전환,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며 에너지 믹스에서 비싼 연료 비중이 늘어난 데다 코로나19, 우크라 사태 등으로 연료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신호를 명확하게 줘야 한다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과 경제 고도화로 전력수요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1~2년 내 전력 부족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요금 인상 요인이 다분한데도 요금을 인상하지 않는다면 에너지를 마구 낭비할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이어 "유가가 오르면서 자동차 운전자들이 운행을 효율적으로 하려 하지만 전기는 현재 너무 싸서 그럴 필요가 없다"며 "연료가격이 쌀 때 전기를 소비하는 방법과 연료가격이 비쌀 때 전기를 소비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하는데 정부가 과도한 보호 신호를 주면 전력수요의 효율화가 불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