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집행자 '치매로 의사 능력 없는 상황서 작성됐다' 무효 주장
재판부 "의사 무능력 상태 인정 증거 없어, 유효하다"…청구 기각
법조계 "치매 환자마다 증상 정도 달라…유언자가 전적으로 자유의지 갖고 재산 처분할 수 있어야"
"대법원도 치매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유언 능력 부인하지 않아…공증 무효? 명확한 증거 필요"
유언자가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 이뤄진 유언철회공증은 무효라며 청구된 무효 확인 소송이 기각됐다. 법조계에서는 "치매 환자가 10분이라도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었다면 유효한 것"이라며 "치매 환자의 유언철회공증이 무효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명확한 의학적 증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7일 대구지법 민사14부(서범준 부장판사)는 유언자가 치매로 의사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유언철회공증서가 작성됐다며 유언집행자인 A씨가 수증인 B씨 등을 상대로 낸 유언공증 무효 확인 소송에서 A씨 청구를 기각했다.
고인이 된 C씨는 1998년 치매 의심 소견을 보여 혈관성 치매 가능성이 있어 외래·약물 치료를 받아왔다. C씨는 2009년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인 B씨에게 자신이 단독 또는 공동으로 소유한 부동산 10건을 유증한다는 내용으로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했지만 4년 후인 2013년 유언공정증서를 철회했고, C씨의 재산은 나뉘어 부인과 B씨를 포함한 세 아들에게 소유권이전등기가 이뤄졌다.
유언집행자인 A씨는 C씨의 유언철회공증서가 치매로 의사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작성됐고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며 2009년 유언공증에 근거해 진정명의회복을 이유로 한 지분 소유권이전등기를 이행해야 한다고 청구했다. A씨는 C씨에게 인지 기능상 장해가 뚜렷하게 관찰돼 의사 결정 능력이 매우 저조한 상태라는 내용의 의료 감정평가서도 제출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언철회공증 당시 망인이 유언의 내용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의사 무능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유언철회공증은 결격 사유가 없는 증인 2명이 참관하고 공증인이 유언 내용을 낭독한 뒤 증인들과 망인이 서명·날인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서 요건을 갖춰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조계는 대부분 법원의 판단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 법리적으로도 개인의 재산은 자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성남 변호사는 "치매 환자여도 환자 개인마다 증상의 정도가 다르고, 정상적 사고가 가능한 순간도 있다"며 "따라서 치매 환자라는 사실만으로 권리를 행사를 막을 수는 없고, 유언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치매 환자의 유언에 대한 의사 판단 염려된다면 애초에 성년후견인을 지정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어야 했다"며 "대법원도 치매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유언 능력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세종 김현진 변호사는 "유언은 17세만 넘어도 할 수 있고, 금치산인 상태에도 의사의 소견이 있으면 유언을 할 수 있다"며 "치매 환자가 10분이라도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고 그때 요건에 맞춰 의사가 옆에 있다면 유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법조계에서는 유언자가 전적으로 자유의지를 갖고 재산을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치매 환자의 유언철회공증이 무효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명확한 의학적 증거가 필요하다. 공증은 엄격한 절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효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홈즈 법률사무소의 하서정 변호사는 "공증은 변호사가 엄격하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며 "공증을 무효라고 주장하려면 당시 공증인인 의사가 공증을 하던 시점에 의사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받아들여진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만일 치매 환자가 정상적으로 생각할 능력이 없이 유언했다고 증명하려면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며 "공증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자격 있는 공증인만 할 수 있기 때문에 한번 이뤄지면 강력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도 "유언철회공증이 무효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한 공증은 공증인의 양심을 걸고 이뤄졌다고 본다"며 "공증인의 윤리의식을 믿어주는 것이 법원의 강한 입장이며 공증이라는 제도의 존재 목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