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노믹스’ 시대 본격 개막
고물가·저성장 문제 ‘감세로 진화
재정·인플레이션 악영향 우려도
한·영 양국 닮은꼴 수장 행보 주목
지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장을 마무리한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의 본격적인 경제 살리기 행보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치권에서도 여왕 서거에 대한 애도로 중단했던 정치·경제 관련 논의를 21일부터 재개하면서 본격적인 ‘리즈노믹스’ 시대가 막이 올랐다.
지난 6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는 현재 고물가·저성장 해결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1%나 상승했다. 가계 에너지 요금은 내달부터 80% 가까이 오를 예정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기록적인 물가와 에너지 요금 상승을 이끈 것이다.
특히 영국은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대외 교역량이 급감하면서 경제 전반이 위축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6월 발표한 ‘브렉시트 이후 1년, 영국의 대외교역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국민소득이 감소하고 근원(core) 인플레이션은 상승하고 있다.
영국은 2017년 세계 교역액이 1조6247억 달러를 기록하던 영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영향으로 지난해 1조6035억 달러로 감소했다. 이 가운데 EU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33.2%에서 30.3%로 떨어졌다. 올해 2월까지 교역 비중은 이보다 더 낮은 28.6% 수준이다. 2017년과 비교하면 13.9%가량 빠진 것이다.
보고서는 “국민소득 측면에서 영국은 EU 대비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더 크고 회복 속도도 느리다”며 “브렉시트는 영국의 대외교역에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왕 서거로 일부 국가의 연방 탈퇴 움직임도 감지된다. 영국연방(코먼웰스·Commonwealth)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뒤 정치적 결속을 이룬 56개 국가 조직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공화국 전환과 연방 탈퇴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소속 국가의 연방 탈퇴는 영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 동시에 경제·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2016년 브렉시트를 결정하는 국민총투표 때처럼 각종 논쟁을 피할 수 없다.
나아가 군주제 폐지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군주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여전히 과반을 웃돈다고는 하나 예전만 못하다. 연방제와 군주제 모두가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경제 위기까지 마주한 영국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 상황이다.
이런 때에 영국을 이끌게 된 리즈 트러스 총리는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 법인세율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기업 환경부담금을 면제하는 등 강도 높은 감세 정책을 약속했다. 이른바 ‘리즈노믹스’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취임 당시 “세금을 낮추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담대한 구상을 내놓겠다”며 “가계 에너지 요금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에너지 공급 관련 장기적 문제도 다루겠다”고 말했다. 알려진 바로는 리즈노믹스를 통해 약 300억 파운드(49조원)의 세금을 줄일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국가 재정과 공공·필수 부문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정책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총리 유세 기간 내내 ‘작은 정부’를 주장한 리즈 트러스 총리의 첫 번째 정책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대규모 에너지 요금 지원이기 때문이다.
특히 리즈 트러스 총리는 에너지 지원 재원으로 국채를 발행하기로 하면서 선거 기간 강조했던 ‘보조금은 없다’던 것을 취임 24시간 만에 철회하면서 스스로 신뢰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이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리즈 트러스 총리 취임 후 첫 주에 대해 ‘별생각 없는, 텅 빈, 진부한’이라고 시간이라고 비꼬았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일각에서는 트러스 총리의 이러한 정책이 심각한 물가 상승세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리즈 트러스 총리의 경제정책은 윤석열 정부와 닮았다. 감세를 첫 번째 정책으로 내세웠다는 점, 민간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강조한다는 점, 작은(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한다는 점 등이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보수당 정권 내에서 환경, 교육, 법무, 재무, 통상, 외무 등 여러 직책을 경험했음에도 총리로서 리더십과 조정 능력은 아직 물음표다. 이 또한 정치 경험이 짧은 윤석열 대통령과 비슷하다.
치솟는 물가, 쪼그라든 내수, 흔들리는 무역 상황에 새로 취임한 한·영 양국의 닮은꼴 수장들의 리더십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