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앞으로 1년간 하루 200만 배럴 감산키로
고환율·고유가·고금리에 산업계 원자재·투자 비용 상승 부담↑
산유국의 원유 감산 선언에 국내 산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원유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르고 이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더욱 자극할 수 있어서다. 가뜩이나 원화 약세로 고전중인 산업계는 에너지 수입 부담 증가로 수익 개선이 더욱 더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산유국 협의체 OPEC+는 5일(현지시간) 회의를 열고 내달부터 원유 생산을 하루 200만 배럴 줄이겠다고 밝혔다.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5월 하루 970만 배럴 감산 이후 최대치로, 200만 배럴은 글로벌 원유 공급량의 2%에 해당한다.
여기에 OPEC+는 내년 12월까지 감산 기조를 유지하기로 해, 앞으로 1년은 원유 생산을 늘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산유국이 전격 감산을 결정한 것은 경기 침체 등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다. 그러나 외신을 비롯한 업계 안팎에서는 산유국들이 원유 수입 감소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한다. 공급 조절로 하락한 국제유가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가 다분하다는 분석이다.
깜짝 발표에 9월 30일 기준 79.49달러였던 서부텍사스유(WTI)가 10월 6일 현재 88.45달러로 뛰었으며 두바이유와 브렌트유도 각각 89.51달러, 87.96달러에서 93.31달러, 94.42달러로 급등하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대규모 감산 조치로 고유가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골드만삭스는 브렌트유가 올 4분기 100달러에서 110달러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고 UBS, RBC 등도 유가가 연내 100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가 강세가 이어질 경우, 글로벌 인플레이션도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기에 원자재발 물가 급등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 더욱 강력하게 긴축 고삐를 쥐게 되면서 글로벌 각국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영향권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국내 산업계에도 고스란히 악영향을 미친다.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동시 상승하면 비용 부담은 배가 된다. 이는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겨 소비를 줄이고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특히 항공업계는 고환율·고유가 기조에 가장 취약하다. 대한항공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유가 1달러(배럴당) 상승 시 약 2800만 달러(394억원)의 유류비가 늘어난다.
환율도 10원 오르면 약 350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 유류비를 비롯해 항공기 대여(리스)료, 영공 통과료 등을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여서, 환율 상승분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재무 상황이 열악한 저비용항공사(LCC)의 경우, 환율·유가 상승으로 손실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항공업계는 고환율, 고유가 등으로 인한 해외여행 심리 위축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 수요 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항공사들의 운항 확대 정책도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정유업계도 수요 위축 우려를 가장 우려한다. 원유 가격이 너무 올라 제품 가격이 급등하면 수요가 위축돼 정유사들의 마진(제품-원유 가격차이)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유가가 지속되면 석유 제품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같은 수요 감소는 정제마진 하락을 동반할 수 있어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 등의 비용을 뺀 가격으로, 통상 업계에서는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BEP)로 판단한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이 2달러 내외로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 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원유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도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구매할 때 달러로 결제한다. SK이노베이션은 반기보고서를 통해 환율 5% 상승 시 법인세차감전 순이익이 303억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석화업계는 나프타 가격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요가 꺾이며 수익이 감소한 석화업계는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수요 부진이 심화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석화 산업의 주 원료인 나프타는 원유에서 정제돼 나오며 평균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나프타 비중은 70%를 웃돈다.
자동차 부품업종 역시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공급망 경색 등 수익성 하락압력을 배제하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친러시아 국가간 에너지 패권 경쟁으로 고유가, 고환율이라는 악재를 맞이했다"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원자재 수급 안정화 방안 등으로 원가 관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