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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㊺] 존엄사의 명암, 욘더 VS 나를 죽여줘


입력 2022.10.27 08:36 수정 2022.10.27 08:3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인간의 죽음과 그 선택에 관하여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w40101003

연명치료 거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들이 많다. 이미 신청했든 아니든, 인간답게 살 권리 못지않게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 많은 콘텐츠에서 연명치료에 대해 회의를 제기했다. 의식불명에 빠진 환자, 치매(알츠하이머)에 걸린 배우자와 그 가족을 주로 중심에 뒀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안락사의 필요성이 일부 공유됐고 단지 편안하게 죽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에 걸맞은 죽음에 관한 화두를 심화했다.


사실, 존엄사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뿐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와 동시에 직결된다. 죽는 순간의 방식 문제가 아니라 ‘인간답지 못한 삶’을 중지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 간에 존엄사 문제에 관한 논의가 확산하면서 관련 영화나 드라마 제작도 늘었다.


영화 '나를 죽여줘' 민석 역의 배우 장현성 ⓒ이하 ㈜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나를 죽여줘’(감독 최익환, 제작 ㈜영화사이다, 배급 ㈜트리플픽쳐스)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중단하고 싶어 하는 민석 씨(장현성 분)가 주인공이다. 영화를 보노라면 그 처참한 일상의 모습, 무너져가는 인간다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실 속에서 민석 씨의 선택에 반대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를 죽여줘’는 우리의 편견에 우리 스스로 도망갈 구멍 없이 맞닥뜨리게 한다. 영화는 선천적 지체 장애를 지닌 고등학생 아들 현재(안승균 분)의 ‘편함이 덜한’ 일상으로 시작한다.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 없는 민석 씨,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인간으로서의 기본 욕망도 있지만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게 많은 현재. 눈물겹게 안쓰러운 부자의 모습에 “나를 죽여줘”가 현재의 외침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 생각에 못난 우리의 편견이 있다.


영화 '나를 죽여줘' 현재 역의 배우 안승균. 드라마 '욘더'에서 신하균이 연기한 배역의 이름은 재현. 우연 아닌 필연 ⓒ

충분히 인생이 녹록지 않고 아버지에 고모(김국희 분)에 친구(양희준 분)도 모자라 아빠 연인(이일화 분)의 도움까지 필요하지만, 이 상황이 존엄사를 생각할 정도인가 잠시 ‘의문’을 품기가 무섭게 최익환 감독은 우리를 생각지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 아버지가 무너진다. 그리고 아버지를 덮친 병마는 아들의 지체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라 할 만큼 ‘인간의 기본’을 순식간에 부서뜨린다.


민석 씨를 삼켜가는 병마부터가 ‘혹시 내게도 닥칠까?’ 두려움에 떨게 할 만큼 파괴력이 크지만, 몸이 자유롭지 못한 아들을 둔 아버지라는 사실이 더해지며 현재네 가족의 고통은 그야말로 극으로 치닫는다. 참으려 해야 참을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대책 없이 솟구친다. 마치 내게 닥친 병마가 나를 더 이상 인간의 범주 안에 두지 않고 밀어내는 것 같은 비참함, 이미 벼랑 끝인 줄 알았는데 가족을 더욱 절벽 아래로 밀어붙이는 불가항력의 힘에 짓눌려 숨쉬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솟는 눈물이다.


생명을 가진 누구도, 지구상의 어느 가족도 겪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극을 지켜보며 자연스레 존엄사를 생각한다. 프랑스영화 ‘아무르’를 비롯해 주로 타인에 의해 존엄사가 선택되던 것과 달리 스스로 존엄을 지키고자 결단하는 민석 씨를 응원하는 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닥터K 역의 배우 정진영(왼쪽)과 세이렌 역의 배우 이정은 ⓒ이하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worldrama

이준익 감독의 OTT(Over The Top, 인터넷TV)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6부작 티빙 드라마 ‘욘더’(감독 이준익, 극본 김정훈·오승현, 제작 영화사 두둥·CJ ENM)도 죽음에 관한 인간의 선택을 다룬다. 다만, 안락사든 존엄사든 ‘생의 마지막 시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죽음 이후’에 관한 논의를 제기한다.


욘더(yonder, 저쪽에, 저승)는 극 중 장진호 박사(정진영 분)가 고안하고 그의 아내 세이린(이정은 분)이 구현한 사후세계다. 모두가 원하고 꿈꾸던 바를 이룰 수 있는, 다툼도 경쟁도 차별도 없는, 심지어 생명의 끝도 없는 ‘영원의 행복 세상’이다.


장진호 박사는 온라인 세상에서 닥터K로 불리며 ‘당신의 죽음을 스스로 멋지게 디자인하라’고 권한다. 아무도 살아 돌아와 가본 적 있다고 말한 적 없는 천국을 진짜로 만들었다고 공언한다. 죽음을 앞둔 자는 혹은 스스로 죽음을 당기려는 자는 욘더 행을 자발적으로 택할 수 있다. 욘더를 선택한 사람들의 ‘살아서의 기억’에 근거해 ‘죽은 자들의 세상’ 욘더는 계속해서 구축되고 확장된다.


드라마 '욘더' 이후 역의 배우 한지민(왼쪽)과 재현 역의 배우 신하균. 사후를 꿈꾸는 인물의 이름이 '이후', 지금 이 순간의 현재를 중시하는 인물의 이름이 '재현'인 것도 필연 ⓒ

이후(한지민 분) 역시 스스로 욘더를 선택했다. 가족력에 의해 어려서부터 ‘단명’을 예상해온 이후는 이승에서 못다 이룬 일들, 가장 아픈 기억을 수정한 ‘사후세계’를 바랐고 스스로 설계했다. 미리 약속한 대로 죽기 직전, 욘더로 안내하는 회사 바이앤바이의 대표 세이렌이 찾아오고 이후의 귀 뒤쪽에 브로핀(기억추출장치)를 붙인다. 이후는 이승을 떠났으나 이후의 기억은 욘더로 갔고, 욘더에서 남편 재현(신하균 분)에게 초대 메일을 보낸다.


작가를 꿈꿨던 기자 재현은 욘더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가치관보다 사랑이 소중했기에 초대를 받아들인다.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그곳에 간다. 나쁜 건 없고 좋은 것만 가득해 보이는, 행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시간과 배려와 경제적 여유와 가족이 완비된 욘더건만 재현은 뭔지 모를 공허를 느낀다. 홀로그램이 아니라 실제적 촉감이 있고 마치 현실에서처럼 새로운 기억들이 쌓여감에도 말이다.


인간의 행복에는 역설적으로 ‘결핍’이 필요한 것인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에는 나 외부의 요소뿐 아니라 내면의 열정과 의지가 필수인가 등등의 고민을 하다 보면 어느새 6부가 끝나 있다. “매 순간이 소중한 것은 지나간 것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기억이 소중한 것은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과 존재, 존재와 부존재(죽음)라는 누구나 생각해 봤으나 쉽게 답을 낼 수 없었던 철학적 질문을 상기시키며 드라마는 끝난다.

아무도 모르는 죽음 너머의 저곳, 욘더.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yoonba0804

2032년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과거 역사와 인물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을 보여온 이준익 감독의 새로운 시도로 탄생한 드라마 ‘욘더’. 매우 의미 있는 아젠다를 세팅한 것은 분명하나 시기상조로 보인 건 왜일까.


존엄사 문제의 해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사후’에 관한 고민을 던지니, 죽음의 방식에 관한 징검다리 돌을 딛지 못한 상황에서 다음 돌로 점프해야 할 것 같은 벅참이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향해 걷고 있는데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그다음을 질문받은 느낌이랄까.


더불어 드라마 ‘욘더’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인간의 ‘자발적 선택’에 관해 부정적 의문을 제기한 결과가 되어 스스로 선택하는 안락사나 존엄사에 대해서도 부정적 심상을 부여하는 측면이 있다. 아니, 의도였다고 해도 좋다. 안락사나 존엄사가 드라마 속 재현이나 피치(윤이레 분)의 잘못된 선택을 유도하고 감추는 방식으로 악용되어선 안 되니 말이다. 인간 생명에 관한 일은 매우 심각한 선택의 문제이므로 논의와 고민은 신중하고 깊어야 한다.

예술은 영원하고 인간은 끝이 있어서 아름답다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w40101003

천재는 평범한 우리보다 앞날을 먼저 내다보거나 앞서 산다. 캐나다 뮤지컬 ‘킬 미 나우’가 한국에서 영화 ‘나를 죽여줘’로 만들어지고, 김장환 작가의 소설 ‘굿바이, 욘더’가 드라마 ‘욘더’가 되어 점점 우리 곁으로 가까이 오고 있다. 그 과정에는 앞서 고민하고 작품으로 연기로 표현해낸 여러 선구자가 있다. 소수의 공상이 대중의 공감을 얻고 실천될 때 그것은 우리의 ‘현재’가 될 것이다. 예술이, 예술가가 우리 세상에 필요한 이유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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