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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㊽] 엔딩이 영화를 만든다, ‘심야카페: 미씽 허니’


입력 2022.11.17 09:14 수정 2022.11.17 09:2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포스터 ⓒ이하 ㈜영화특별시SMC 제공

“엔딩이 영화를 만듭니다. 마지막을 잘 쓰면 히트 치죠. 결점과 문제가 있어도 끝만 잘 쓰면 돼요.”


영화 ‘어댑테이션’(2002)에 나오는 말이다. 명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천재 시나리오 작가로 불리는 찰리 카프만이 마치 자신을 주인공으로 해서 대본의 창작 과정을 보여주는 듯한 형식을 취한다. 소설 ‘난초 도둑’을 원작으로 패기 넘치게 ‘이제까지 없었던’ 시나리오를 쓰겠다던 카프만은 난관에 봉착한다.


급기야 패배자 같던 쌍둥이 동생 도널드가 할리우드의 ‘스토리 대부’ 로버트 매키의 강연을 들은 후 뜨거운 반응을 얻는 대본을 탈고하자, 찰리는 자존심을 꺾고 매키의 강연을 들으러 비행기까지 타고 뉴욕으로 간다. 그리고 한 번 더 용기를 내 매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심야 바에 마주 앉은 찰리에게 매키가 해주는 말이 바로 ‘엔딩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댑테이션’도 중반까지는 신선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 다소 관객을 낯설게 하지만, 중반 이후 몰입도를 높이고 기막힌 엔딩에 다다르면서 작품에 대한 만족도를 한껏 높인다.


사실, 많은 영화가 용두사미 격이다. ‘오~ 좀 하는데’ 싶게 시작하기도 하고, 중반까지도 잘 나가다가 마무리를 못 해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가 숱하다. 그런 와중에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이 꽤 창대한 영화를 만나면, 중반까지의 불만족이나 아쉬움은 잊게 된다.


영화 ‘심야카페: 미씽 허니’(감독 정윤수, 제작 ㈜케이드래곤, 배급 ㈜영화특별시SMC)가 바로 그런, 엔딩으로 영화를 만들고 끝부분에서의 만족감으로 이전의 미흡함을 지우는 경우다.


영화 자체의 설정이, 현실과 환상이 개념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공간에 공존하는 데다 한 인물에게 과거와 현재가 미래가 겹치다 보니 분명 낯설 수 있다.


낯선 설정과 그에 따른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익숙하고 부드럽게 받아들이게 하려면 배우의 친숙도와 연기력이 중요한데, 출연 배우들의 면면이 덜 여문 건 사실이다. 그들에게 좋은 잠재력이 있다고 해도 경험으로 단련되지 않은 현주소를 가리기란 쉽지 않고, 경험과 단련의 정도를 뛰어넘는 신인은 아주 드물게 존재한다.


‘심야카페: 미씽 허니’의 푸릇푸릇한 배우들을 잘 버무려내고 어우러지게 한 이는 감독 정윤수다. 어느 정도의 공을 들여야, 어느 정도로 영화 전체를 한눈에 꿰뚫는 시선이어야 지금처럼 마무리가 좋았을지 놀라울 뿐이다.


배우 문숙 ⓒ

다행히 정윤수 감독에게는 두 명의 천군만마가 있었다. 남자 주인공 윤태영 역 배우 이이경의 좋은 목소리와 편안한 연기, 여자 주인공 남궁윤(채서진 분) 엄마 역 배우 정영주의 웃겼다 울렸다 연기도 좋았지만. 영화 말미에서 ‘압권’의 장면을 만든 배우 문숙과 김대건이 그들이다.


두 배우는 극 중 남매(오빠 추철인, 동생 동백)로 등장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심야카페. 자정이면 문을 열고 해가 뜨면 사라지는 판타지 카페에서 두 사람은 만난다. 여자 동생은 백발의 할머니, 오빠의 모습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듯 젊디젊은 모습이다. 1950년대 초반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막 나와 심야카페에서 일하는 오빠, 월남해 홀로 모진 세월을 견디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된 2022년의 동생.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고 꼭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


제목의 ‘미씽 허니’, 결혼식 당일 갑자기 사라진 남편 태영을 찾으려는 신부 윤의 사연에 비해 시대적 아픔이 서려 있어서 이 남매의 사연이 특별한 게 아니다. 영화에서 심야카페는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야 할 사람’이 초대되고 조우하는 장소다. 정말 그런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환상의 장소다. ‘허니’라는 게 꼭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의미하겠는가. 그러한 주제 의식을 응집해 보여주는 이들이 바로 이 남매다. 70년의 세월을 건너,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심어 준다.


배우 문숙은 사람의 생 칠십 년의 무게로 반음쯤 든 젊은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갓 서른을 넘긴 김대건 배우는 대선배의 아우라에 밀리지 않는 묵직함과 노력을 더한 북한 사투리 연기로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받는다.


정윤수 감독과 두 배우가 선사하는 뭉클한 감동이 아름다운 마침표를 그리는 ‘심야카페: 미씽 허니’. 찾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리움과 따스함이 더욱 커질 영화는 오늘 개봉한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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