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818조…전년比 25%↑
5대 은행 정기예금에 지난해에만 160조원이 넘는 돈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예·적금 상품이 속속 나오면서 주식·부동산 등 투자자금이 안전한 은행권으로 몰리는 '역(逆)머니무브' 때문이다. 수신 금리 경쟁 자제 권고로 잠시 주춤했지만, 금리 인상 기조에서 은행권으로 자금이 쏠리는 현상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총 818조43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0%(163조5007억원) 증가했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174조9627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26.9% 늘었다. 그 다음 농협은행이 172조9221억원으로 20.7% 증가했다. 하나은행이 162조7239억원, 우리은행이 154조5662억원으로 각각 23.4%, 30.5% 증가했다. 신한은행도 153조2607억원으로 23.9% 늘어났다.
이들을 포함한 은행권 전체 정기예금도 1년 새 20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965조318억원으로 지난해 들어 186조608억원 늘었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2년 1월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예금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은 고금리 영향이 컸다. 지난해 초만해도 1%대에 불과했던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1년새 4~5%대까지 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정기금리는 4.29%로 2008년 12월(5.67%) 이후 가장 높았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은행권에 몰리는 '역머니무브'가 발생한 것이다.
역머니무브는 비은행권에서도 발생했다. 은행권 수신금리가 오르면서 2금융권 수신자금까지 1금융권으로 옮겨가자, 저축은행 업권과 개별 상호금융 조합까지 예금금리를 따라 올리면서 연 6%대를 넘는 상품이 등장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이 나쁠 건 없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기준금리가 한번에 0.5%포인트 오르는 빅스텝으로 예금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대출 금리도 덩달아 뛴다. 실제 은행들의 대출조달 비용이 늘면서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함께 올랐다.
또 금리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2금융권이 은행권을 따라 예적금 금리를 올리면서 자금경색 사태를 심화시켜 저신용자의 대출문이 좁아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농협과 신협 등 상호금융권의 일부 지점은 고금리 예적금 특판을 판매했다가 과한 자금이 몰려 해지를 읍소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금융당국은 수신금리 경쟁 격화를 막기 위해 은행권에 금리 인상 자제를 권고했고, 그 결과 은행권은 4%대로 저축은행은 5%대로 예금금리가 조정된 상황이다.
다만 새해에도 은행권으로 돈이 몰리는 역머니무브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최종 기준금리를 5.1%로 제시해 올해 상반기까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국은행 역시 한미 금리차가 22년만에 최대로 벌어진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현 3.25%에서 최소 3.5%까지는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