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어 미스터리 장르에 도전장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SBS 2부작 드라마 ‘17세의 조건’, tvN 2부작 드라마 ‘외출’ 등 단막극으로 경험을 쌓던 류보리 작가는 지난 2020년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통해 첫 장편 드라마에 도전했다. 스물아홉 경계에 선 클래식 음악 학도들의 아슬아슬 흔들리는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나가며 젊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유발했었다.
지금은 SBS 월화드라마 ‘트롤리’를 통해 미스터리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거를 숨긴 채 조용히 살던 국회의원 아내의 비밀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부부가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와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드라마. 망가진 책을 고치는 책 수선가 혜주(김현주 분), 재선 국회의원 중도(박희순 분) 부부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과 숨겨진 비밀들이 점차 베일을 벗으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 멜로도, 미스터리도…섬세한 감정 통해 높이는 몰입감
류 작가의 첫 장편 드라마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채송아(박은빈 분), 박준영(김민재 분) 등 흔들리고 방황하던 스물아홉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박은빈, 김민재 등 연기력 뛰어난 청춘 배우들이 나서긴 했으나, 신예 작가, 그리고 클래식이라는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 시선이 오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클래식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흔들리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통해 음악 학도는 물론, 흔들리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음악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도전을 이어왔지만, ‘이 길을 계속 가야 할까’ 고민하는가 하면 치열하게 경쟁하며 오래 쌓아온 우정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는 등 누구나 할 법한 현실적인 고민들을 적절하게 녹여내면서 공감대를 높였던 것.
그렇다고 극적인 사건이나 심각한 갈등으로 몰입을 끌어내는 작품은 아니었다. 바이올린을 좋아하지만 재능이 부족했던 송아와 피아노를 치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던 준영이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들만의 답을 찾아가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그만큼 섬세하게 포착해 시청자들이 그들의 감정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것이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만의 분위기도 구축했었다. 말보다는 음악으로 상대를 위로하며 보는 이들에게도 함께 여운을 남기는 등 인물들의 감정을 연주에 녹여내면서 감성적인 분위기를 배가시켰던 것이다.
류 작가의 이 같은 섬세함이 미스터리 드라마 ‘트롤리’에도 색다른 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트롤리’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트롤리 딜레마’를 소재로 삼는 작품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가 그대로 죽이면 다섯 명의 사람을 죽이게 되고, 선로를 바꾸면 한 사람만이 죽게 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 것이 ‘트롤리 딜레마’의 내용.
6회까지 방송된 ‘트롤리’에서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 혜주, 중도 부부가 선택지를 마주하게 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들을 불러오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그려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밝혀져서는 안 될 과거의 진실들도 점차 베일을 벗으면서 긴장감을 배가시켜 나가고 있는데, 이때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적 재미 외에도 인물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는 흥미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특히 가출한 딸을 찾으면서 남편이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이용하는 혜주의 간절함, 또 죽은 아들의 애인이라며 찾아온 수빈(정수빈 분)을 향한 의심 등 누구나 가질 법한 감정을 통해 캐릭터들을 향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캐릭터의 선택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선 그들이 처한 상황 또는 감정 상태가 충분히 설명이 돼야 하는데, 이때 류 작가의 강점인 섬세함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추후 더 복잡한 상황들이 벌어졌을 때, 지금 쌓아둔 감정이 어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될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