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에서 1인 2역
배우 이민정인 '라디오스타'(2012) 이후 약 11년 만에 '스위치'로 돌아왔다. 그리움을 유발하는 첫사랑의 아이콘에서 생활력 강한 아내까지 이민정표 '수현'은 '스위치'에서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하기 충분했다.
'스위치'는 캐스팅 0순위 천만 배우이자 자타 공인 스캔들 메이커,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만끽하던 톱스타 박강이 크리스마스에 인생이 180도 뒤바뀌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영화다. 완성된 영화를 본 이민정은 웃음과 감동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면서 만족감을 표했다.
"영화 시나리오도 재미있었는데 권상우, 오정세 씨가 디벨롭 시킨 부분이 많더라고요. 대사 만이 아닌 주고 받는 행동들도 영화 대본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배우들의 노고가 잘 녹아있는 작품이 된 것 같아서 기뻤어요."
이민정은 시나리오를 읽은 후.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라는 생각에 단번에 출연을 결정지었다.
"제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영화를 좋아해요. 제가 공감해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스위치'를 선택했어요. 인물이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 누구나 해볼 법 하잖아요. 다들 재미있게 보실 거라고 생각해요."
'스위치'는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가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지점에서 시작됐다. 이민정도 마찬가지로 '스위치'에 출연하면서 과거로 돌아가면 어떨지 회로를 돌려보기도 했다.
"저는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과거의 나와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그 때의 나는 최선을 택했을 테니까요. 굳이 돌아간다면 스무 살 때로 돌아가 놀고 싶네요.(웃음)"
박강이 과거로 돌아가 수현과 가정을 이룬 장면들은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돼 있다. 과거 속 장면들의 힘은 현실감 넘치는 일상 속 공감이다. 이민정은 권상우와 함께 호흡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면서 수현을 입체감 있게 만들어나갔다.
"감독님은 대본의 모든 걸 정형화 시켜서 '이렇게 해야 해'라는 걸 정해주지 않았어요. 편하기 연기하면 본인이 알아서 가져다 쓸 테니 여러 버전으로 찍어도 되고, 말도 입에 붙도록 편하게 바꿔도 된다고 하셨죠. 그래서 권상우 씨와 아역들이 모두 즐겁게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셨달까요 박강을 놀리면서 '이 닦았냐'로 묻는 장면에서 많은 분들이 웃으시더라고요. 제가 박강을 이도 안 닦았던 남편이라고 생각해 던져봤는데 재미있어 해서 좋았어요."
억척스럽고 수현을 연기하기 위해 메이크업도 피부 외에는 크게 하지 않았다. 의상도 목이 늘어난 의상과 고무줄 바지를 가져와 입었다. 오죽하면 스태프들이 이민정에게 의상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이민정은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을 줄이고 조금 더 대본과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고 떠올렸다.
"정말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면 화장도 하지 않고 찍었어요. 정말 피부만 살짝 깔고 수현의 컷들을 찍었어요. 저는 생활감이 묻어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 오히려 편했어요. 그래서 정말 현실적인 복장과 모습을 보여줬더니 스태프 분들이 걱정하기도 했어요. 몇 신는 착장을 청바지로 바꿔달라고 하기도 했고요. 하하. 원래의 상황으로 되돌아 온 후 갤러리에서 박강과 재회하는 신에서 스태프들이 '너무 예뻤다'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때 순간 '집에 있는 장면들이 얼마나 이상하면 그 장면이 예뻤다고 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되기도 하더라고요.(웃음)"
쌍둥이 남매로 등장하는 박소이, 김준과의 호흡도 중요했다. 실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민정은 권상우와 함께 현장에서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며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은 연기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표정에서 거리감을 못 숨겨요. 그래서 정말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면서 찍었죠. 그러다가 2주 만에 보면 또 아이들이 낯을 가려요. 그러면 또 한창 놀아주고 가까워지고 그러면서 촬영했어요. 아이 엄마들이 편해 보이더라고요. 하하. 개봉 시즌이 돼 아이들과 2년 만에 봤는데 많이 컸더라고요."
이병헌과 결혼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민정은, 확실히 엄마가 되기 전과 후의 연기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성애 연기는 아기 낳기 전과 후 감정의 폭이 두 세배는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전엔 나를 위주로 돌아갔다면 이제는 제가 아이의 세상을 만들어주니까요. 확실히 그런 면에서 엄마를 연기하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는 남편으로 호흡을 맞춘 권상우에게 칭찬을 늘어놨다. 장난기와 책임감을 고루 갖춘 권상우 덕분에 모두가 물리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즐기면서 일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책임감 있게 아우르는 스타일이었어요. 모든 배우가 그렇지는 않거든요. 부끄러움이 많은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권상우 씨는 반장 같은 기질이 있어서 분위기 자체를 즐겁게 이끌더라고요. 모두 촬영을 즐겁게 한 기억이 있어요. 이번 '스위치'는 제작부터 완성되기까지 대립이나 갈등 없이 안 풀리는 순간이 많이 없었어요."
무명배우 남편과 살면서 쌍둥이 남매를 키우고, 동네 화실을 운영하며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수현. 마트 캐셔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남편의 꿈을 응원한다. 이민정은 수현이라는 캐릭터에 어느 정도 공감했을까.
"너무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 아닌가란 생각을 하긴 해요. 너무 착하잖아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만약 저라면, 하하. 글쎄요. 저도 수현처럼 응원하고 지지하겠다고 말할게요.(웃음)"
수현과 이민정이 가장 닮은 점은,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혼자서 문제를 척척 해결한다는 것이다.
"제가 성격이 급해서 문제가 있으면 그냥 해결해요. 전구 하나 갈아끼우는 것도 남편을 부르기 전에 제가 해버리는 스타일이어서요.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버려서 남편이나 아이는 문제가 있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참 우리 집은 잘 돌아간다'라고 생각하죠.(웃음) 어렸을 때 엄마가 집안일은 잘하는 사람이 모두 하게 된다고 너무 일을 잘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게 됐죠. 조금 더 제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 해주셨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웃음)"
오랜 만에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 이민정. 과거에 비해 영화들이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여배우가 활약할 수 있는 영화들이 많지 않은 점이 아쉽다. 그는 나이가 먹을 수록 농익어가는 감정과 분위기들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작품들로 대중과 만나고 싶다.
"지금은 저도 나이가 있으니 다른 얼굴이나 모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고요. 영화 '화차'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요. 저도 미스터리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여배우가 남자 배우만큼 역할이 차별화 돼 있지 않아서 작품을 선택할 때 고민이 많아요."
현재 '스위치'는 '장화 신은 고양이2'와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같은 날 개봉했다. 이민정은 건강한 에너지가 담긴 '스위치'가 새해를 여는 첫 한국 영화인만큼 많은 관객들의 관심과 기대를 당부했다.
"개봉이 밀렸다고 했을 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 이렇게 새해 첫 영화로 개봉하게 돼 오히려 좋은 것 같아요. '슬램덩크'와 '장화 신은 고양이2'와 함께 경쟁하게 됐는데 우리 영화는 조금 더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영화가 구정 때까지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방으로 무대 인사를 가고 싶네요. 하하. 가족, 친구들과 '스위치'로 훈훈함을 느끼고 좋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