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법원서도 반성문·기부 감형 인정 않는 추세…2차 가해 방지, 합의 여부 등 종합해 양형 판단"
"일부 변호사, 반성문 대필·감형 패키지 등 상품 앞세워 광고…오해 조장해"
"검찰, 과거엔 유무죄 따지고 공소유지 집중…앞으로 양형기준 살피는 데 집중할 것"
"성범죄전담부 공판검사 업무 과중… 세부적인 양형 전부 살피기 어려울 수도"
검찰이 감형을 목적으로 한 성범죄 가해자의 '꼼수 감형' 시도에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성범죄 피고인들이 감형을 목적으로 반성문, 기부자료를 무분별하게 제출하고, 일부 변호사가 반성문을 대필하는 등 사례가 빈발해 제대로 된 처벌이 안 된다는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꼼수 감형'이 법원에 통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으며, 과거에는 검찰이 기소된 사건에 대해 유무죄를 따지고 공소유지를 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양형기준을 따지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성범죄전담부 특성상 수사 및 재판이 늘 산적해 있고, 공판검사들의 업무가 과중한 탓에 개별 양형사례를 모두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인 의견도 나왔다.
대검찰청(총장 이원석)은 14일 가해자와 피해자 합의서 작성 과정의 강요나 위조를 밝혀 엄벌하고, 피해의 심각성과 피해자의 처벌 의사를 법정에 제출해 중형이 선고되게 하는 등 적극적으로 양형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대검이 일선청에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제출된 양형자료의 진위 등을 면밀히 확인하고, 양형기준 상의 양형인자 아닌 사정이 양형에 참작되지 않도록 재판부에 적극적으로 양형의견을 개진하도록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들이다.
법원도 이 같은 검찰의 엄정대응 기조에 발 맞춰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을 재판 과정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대검 공판송무부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선고된 주요 성범죄 판결 91건을 전수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법원이 반복적인 반성문 제출이나 기부자료 만을 근거로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을 인정한 사례는 없었다.
검찰 출신 조주태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법원에서도 반성문 제출과 기부를 온전한 반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반성문을 자주 제출하고 많은 기부를 하는 게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결정적으로 양형에 반영 할 만한 요소는 아니다"며 "성폭법에 따른 양형인자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양형을 한다. 피해자와 합의 여부가 제일 중요한 양형요소다"라고 설명했다.
검찰 출신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 역시 "실무에서는 큰 참작이 되지는 않는다. '꼼수 감형'이 법원에 통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며 "'진지한 반성'이란 피고가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태도로 임하느냐를 총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지는 않았는지, 합의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피해 관련 사진이나 파일 등 유포를 방지하려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일부 변호사들이 성범죄 형량을 줄이고 선처를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반성문 대필, 감형 패키지 등의 상품을 앞세워 광고를 많이 하고 있는 추세다. 오히려 변호사들이 오해를 조장한 면은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대검 차원에서 엄정대응을 천명한 만큼 일선 검찰의 성범죄 수사방향과 분위기가 점차 바뀌어나갈 것으로 봤다. 다만 성범죄전담부에 치중·과중된 업무가 많은 탓에 각 사건마다 세세한 양형을 모두 확인하고 따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검찰 성범죄전담부 출신 임예진 변호사(아리아 법률사무소)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양형자료를 검토할 때 실체관계를 더욱 따지고, 진정한 반성의사가 담긴 것인지 실질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판검사가 신경쓰고 살펴봐야 할 지점이 더 추가가 된 것이다"며 "과거에는 기소된 사건에 대해 유무죄를 따지고 공소유지를 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양형기준을 따지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변호사는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수법, 연령, 성범죄 치료 프로그램 이수, 합의 여부 등 다양한 양형자료를 더욱 세심하게 따지고 판단해 성범죄를 보다 철저하게 조사하는 분위기가 형성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오 변호사는 "성범죄전담재판부에 들어가는 공판검사들의 업무가 다소 많은 편이다. 한 주에도 수 십개의 재판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개별사건 모두의 양형을 전건 살피고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회의적인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