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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보행친화' 환영하지만, 운전자들의 한숨도 생각해야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3.03.23 07:05 수정 2023.03.23 07:05        박찬제 기자 (pcjay@dailian.co.kr)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 후 면적 2.1배 증가…광장 폭도 1.7배 확대

광장 내 녹지면적도 3.3배 증가…아이들 위한 '터널분수'도 생겨

사업 진행되며 10~12차로, 7~9차로로 줄어…사업 후 교통속도 11.93㎞/h 느려져

운전자들에게 적대적 공간될 줄 모두가 예상했었다…서울시, 다른 사업에는 실수하지 말길

광화문광장 조감도.ⓒ서울시

기자가 최근 홍제역 인근의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마감도 끝냈고, 다음날 무슨 취재를 할지 계획도 다 세워둔 상태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택시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기사님이 "에휴"하며 짙은 한숨을 뱉었다. 궁금한 건 물어보는 게 직업병이기도 하고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라는 생각도 들어 "무슨 일 있으시냐"고 물었다.


말을 건넨 뒤 '혹시 오지랖 넓은 손님이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라는 경각심이 뒤늦게 들었지만 기사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이 시간대는 광화문광장이 턱턱 틀어막혀서 한숨이 저절로 나오네요"라고 답했다. 그 말대로 창밖은 빽빽하게 늘어선 차들로 꽉 막힌 상태였다. 휴대폰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경로도 광화문광장이 이어진 도로를 새빨갛게 빛내고 있었다.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대로는 원래부터 출·퇴근 시간이면 이동하는 차로 빽빽해서 길이 막히는 구간이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택시 좀 몰아본 사람이라면 기피하는 장소들 중 하나란다. 그런데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을 재조성하면서 도로가 줄어들며 안 그래도 막히던 길이 더 막히게 됐다는 게 기사님 설명이었다.


광화문광장 재조성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시작했다. 박 전 시장이 사망한 뒤에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공사를 강행해 첫 삽을 떴다. 당시 시민단체들과 차기 서울시장 후보들이 새 시장 선출 후 사업 타당성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 이후 취임한 오세훈 시장은 "이미 공사에 250억이 투입됐고, 이제와서 원상복구하면 400억의 매몰비용이 든다"며 공사를 이어 나갔다.


1만 8840㎡ 정도던 광화문광장은 재조성 사업 이후 4만300㎡로 2.1배 넓어졌다. 광장 폭도 35m에서 60m로 1.7배 확대됐다. 지난해 7월 재개장한 뒤에는 완전히 보행친화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광장 전체 면적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9367㎡에 녹지가 조성돼 기존 2830㎡의 약 3.3배로 늘었고, 아이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터널 분수'가 생겼다. 바닥에는 한글 창제 원리를 담은 '한글 분수'도 만들어졌다.


파노라마로 바라본 광화문 광장.ⓒ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문제는 보행 친화 공간이 된 만큼 운전자들에게는 적대적인 공간이 됐다는 점이다. 기존 광장의 서쪽(세종문화회관 앞) 6차로가 통째로 증발했다. 이 6차로가 광장으로 편입된 덕에 광장의 전체 면적이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대신 광장 동쪽 차로를 늘리긴 했지만, 전체 10~12차로였던 세종대로는 7~9차로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 교통정보센터에 따르면 2023년 2월 세종대로 평균 교통 속도는 오전 8시 기준 18.92㎞/h였다. 반면 재조성 사업 전 10~12차로를 유지하던 2020년 2월 같은 시간 교통 속도는 평균 30.85㎞/h로 나타났다. 사업 후 교통 흐름 둔화가 11.93㎞/h라는 실제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택시에서 내리며 기사님께 물어봤다. 광화문광장 근처에서 콜이 잡히면 어떡하시냐고. 기사님은 "그래서 우리는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서울역, 북창동, 광화문광장 잘 안 갑니다"고 짧게 답했다.


광화문 광장이 보행 친화 공간이 되면 자동차들의 운행 속도가 어찌될 지는 누구나 예견할 수 있었다. 뻔하게 예상되는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촘촘하게 따지지 않은 결과가 작금의 운전자들의 깊은 한숨이다. 세금 800억을 들여 공사한 광화문광장을 다시 뒤엎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다만, 앞으로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을 지나며 한숨 쉬는 운전자들을 보면서, 다른 사업을 할 때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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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제 기자 (pcjay@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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