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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㊻] 옥수역 귀신 뒤엔 그들이…이유 있는 흥행


입력 2023.05.19 11:16 수정 2023.05.19 11:1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2011년을 강타한 작가 호랑의 공포웹툰 ‘옥수역 귀신’이 12년 뒤 영화로 돌아왔다. 공포영화의 전설 <링>의 시나리오 작가 다카하시 히로시가 스토리를 풍성하게 키웠다 ⓒ 이하 스마일이엔티 제공

영화 <옥수역 귀신>(감독 정용기, 제작 미스터리픽처스・영화사조아, 제공・배급 스마일이엔티)이 꾸준한 흥행 속에 관객 24만 명을 기록 중이다. 대형 배급사의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호불호 강한 공포영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호조의 성적표다. 일찌감치 프랑스, 홍콩 등 127개국에 판매된 것에 힘입어 손익분기점도 이미 넘었다.


영화 <랑종> 이후 2년 만에 관객 20만 명을 돌파한 공포영화, 아무리 겁이 많아도 이쯤 되면 극장에 가서 봐야 한다. 맘을 단단히 먹고 이왕이면 대낮으로 상영 시간대를 골랐다. 역시 여러 사람이 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기자 김나영 역의 배우 김보라 ⓒ

우선 스토리 전개가 깔끔하다. 단순히 개연성 없이 귀신만 출몰하는 영화가 아니다. 가십성 기사를 주로 다루는 언론사 데일리모두, 사주(김수진 분)의 압박에 조회수 팍팍 나올 특종을 건져야 하는 김나영 기자(김보라 분)의 미스터리 취재를 따라가는 형식을 취했다. 공포와 스릴을 함께 노리는 전략이다.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 2·3·5편을 연출, 흥행의 맛을 본 바 있는 정용기 감독은 군더더기 없이 직선으로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저력을 보였다.


일상의 공간… 출근과 퇴근, 업무와 여행, 모임과 데이트를 위해 밤낮 가릴 것 없이 수시로 드나드는 지하철역을 배경으로 하니 공포감이 훨씬 커지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영화를 보다 숱하게 눈을 질끈 감았고, 아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미리 벌벌 떨었다. 신경질을 부르는 정도는 아닌, 적절한 효과음이 무서움을 배가시킨다. 예상 못한 귀신 출몰의 타이밍, 출몰 위치도 드문 드문 배치돼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태희 역의 배우 신소율 ⓒ

그래도 흥행의 일등 공신은 배우다. 김나영 기자를 맡은 주연 김보라는 실제로 겁 없고 당찬 느낌을 캐릭터에 드리우며 당돌함과 정의감 사이의 미묘한 지점에 인물을 세웠다. 여기에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까지 더하니 김나영은 물론 영화까지 현실감이 증폭된다.


배우 신소율인가, 무서운 와중에도 첫 등장부터 대사 한마디 없이 눈길을 끄는 여인. 얼굴을 검게 분장하고 색조 화장은 하지 않으니 되레 예쁜 눈매가 도드라진다. 익숙한 배우의 새로운 얼굴은 눈길을 붙들고,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화법과 말투는 신소율이 마치 새롭게 발견하는 걸출한 신인인 듯 신선함을 준다.


데일리모두 대표 모두연 역의 배우 김수진 ⓒ

데일리모두의 모두연 대표를 연기한 배우 김수진은 극에 단단한 밑바탕을 형성한다. 젊은 배우들이 그간 하지 않았던 연기로 확장할 수 있게, 미스터리 공포에서 뛰어놀 수 있게 정통의 정극 연기로 마당을 열어 준다. 다른 장르의 드라마나 영화로 옮겨 놓아도 손색이 없을 갑질 사장 연기인데, 푸른색을 칠한 손톱을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손톱자국을 의심케 하는 발목을 뱀가죽 구두 위에 슬쩍 드러내는 것만으로 공포영화 맞춤의 연기가 된다. 이런 게 내공이다.


영화 <리바운드>에서 자식에게 모든 걸 해주고 싶으나 그놈의 돈이라는 상황이 허락지 않아서 가슴 저미는 모정을 연기하는 김수진과 <옥수역 귀신>의 카랑카랑한 언론사 대표 김수진이 같은 배우라는 게 짜릿하다. 그 갑질이 어찌나 쫄깃한지, 영화 말미 어쩌면 김나영 이상으로 지금의 그 엔딩을 속으로 외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대중적 인지도와 상관없이 선배 배우들의 무게감과 활약으로 <옥수역 귀신>의 완성도를 높이고 보는 재미를 더한 미덕은 더 있다. 염습사 역의 배우 김강일은 날카로운 눈빛과 의뭉스러운 말투만으로 공포를 형성하고, 형사 역의 배우 김구택은 ‘사회적 평균 의식’을 대변해 사람을 차선에 놓고 눈앞의 목표만 좇는 이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배우 김구택은 준비된 배우는 단 한 장면이어도 언제든 그 장면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배우 김강일은 영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처럼 공포영화의 고정 캐릭터로 보고 싶다.


우원 역의 배우 김재현 ⓒ

영화에서 처음 보는데 기본 이상을 해준 배우들도 <옥수역 귀신>의 흥행에 한몫했다. 밴드 ‘N.Flying’(엔플라잉)의 김재현, 오디션 출신 유니그룹 ‘소년24’의 오진석은 신인 배우임에도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다. 세간의 화제가 된 영화의 포스터, 옥수역 플랫폼에서 경추와 척추가 꺾인 자세로 춤추는 통에 그 자체로 귀신처럼 보이는 으스스한 ‘썸머 잇 걸’ 역의 배우 김은민(리단)도 짧은 출연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언급하지 못한 배우를 포함해, 단역에 어린이 배우들까지 연기에 구멍이 없는 덕에 <옥수역 귀신>에 대해 취향을 논할지언정 완성도를 흠잡기는 어렵다. 모든 흥행에는 이유가 있다. 직접 보면 알 수 있는 이유, 혹시나 극장 갈 여력이 없다면 OTT 출시를 기다려 보자. 지하철 탔을 때 이어폰 끼고 혼자, 비 오는 날 이불 쓰고 TV로 보는 것도 제맛일 터.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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