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족수 미달로 간호법 부결…폐기수순
여야, 제도 개선 약속했지만 동력 상실
실익 없이 직역 간 갈등만 남긴 채 파국
與 "민주, 간호법 아닌 정부 공격이 목적"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이 30일 국회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됐다. 여야 양측 모두 결집하며 이탈표는 거의 없었던 예상된 결과였다. 법률안은 앞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수 개월 간 이어졌던 간호법 국면은 보건·의료업계 직역 간 갈등과 상처만 남긴 채 아무런 실익 없이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열린 본회의에서 민주당은 의사일정 변경 신청을 통해 '간호법 재의안 표결'을 기습 상정했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289명 중 찬성 178표, 반대 107표, 무효 4표로 '간호법 재의의 건'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법률안이 다시 국회에서 재의결 되기 위해서는 과반출석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법안이 부결된 뒤 양당은 상대당에 그 책임을 돌리면서도 다른 법안 혹은 제도 개선을 통해 간호사에 대한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본회의 산회 직후 취재진과 만나 "정부·여당이 찬성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해 여당과 함께 합의할 수 있는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했고,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늘의 간호법 부결과 별개로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제도적 개선책 마련과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원점에서 논의를 다시 시작할 동력이 크지 않아 기약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경우 재의안이 부결된 뒤 여야 모두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활발한 논의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간호법 역시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문제는 법안과 재의결 과정에서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과 앙금만 적지 않게 남았다는 점이다. 실제 간호사협회의 간호법 드라이브에 의사협회를 비롯해 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 등 13개 직역이 반대 투쟁에 나서며 대립이 격화됐다.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정치권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민주당이 수적 우위로 간호법을 밀어 붙이면서 파국을 맞았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간호법을 통과시키는 것보다 부결시켜 재의결을 요구한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이를 부결시킨 여당에 부담을 안기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냐"며 "간호법을 통해 민주당이 한 일이라고는 의료계를 두 동강 내버린 것과 국회법을 형해화시키면서 또 한 번의 '입법폭주'를 감행한 것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간호법 재의안 반대 토론에 나선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간호법의 겉모습은 코로나로 고생한 보건·의료분야 종사자들의 전반적 처우개선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간호사만의 이익을 위해 타 직역의 업무와 자격 기준까지 간섭하는 악법"이라며 "(증거는) 같이 종사하는 13개 직역의 분들이 일률적으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특히 "(법이 통과되면) 간호조무사 자격취득을 위해 대학을 나와도 다시 학원을 가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당연히 모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조항"이라며 "법안을 밀어붙였던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밀어붙인) 결과는 중요한 민생 법안들이 정치 법안이 되고 본회의장에서 싸우는 법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