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다운 어린이가 아닌 어린이 혹은 어른답지 않은 어른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시인을 꿈꾸며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존의 잘 만들어진 작품을 읽으며 공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럴 경우, 기존의 작품들과 거의 비슷하게 작품을 만들어낼 무렵에 고비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온다.
자신의 작품이 매끄러워진 듯 보여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망하는 고비에 접어든 것이다. 반대로 매끄럽기는 하지만 내 것은 아니라는 느낌 때문에 불편함을 갖게 된다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전자의 경우, 그런 느낌에서 멈추면 그저 그런 시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복잡하다. 불편함을 느껴 이제까지 배운 걸 내다버리면 세 가지 경우 중 하나가 될 확률이 높다. 멋진 시인이 되거나 혹은 이상한 시인이 되거나 시인이 되지 못하고 지망생에 머물게 된다.
2019년 계간 ‘시와 동화’ 동시 부문 신인 추천을 받고 시인의 길에 들어선 이정이 시인이 자신의 첫 번째 동시집 ‘눈으로 찍었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정이 시인의 동시는 때론 거칠고 때론 삐걱이며 때론 당황스럽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행간에서 진한 눈물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정성스럽게 숨겨 놓았기에 건성으로 찾으면 발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정이 시인은 앞서 이야기했던 케이스 중에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코 그 누군가를 따라하지 않는다. 거칠지만 매끄러움으로 치장하지 않는다. 삐걱이더라도 익숙한 기름칠은 하지 않는다. 당황스럽더라도 군더더기 설명은 붙이지 않는다. 자존심이 강하다. 그게 자산이며 장점이고 그게 단점이다. 그러나 단점 속에 색다른 미학이 숨어 있다. 눈 밝은 독자는 그런 발견 하나 만으로도 시집을 읽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듬어야할 곳이 많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은 끝이 멀다는 것이며,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고, 더 오래 생명을 유지할 이유와 명분과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것이며, 늙지 않았다는 것의 증명서이기도 하다.
시집을 펼치면 어린이답지 않은 어린이가 불쑥 튀어나와 동시답지 않은 동시를 읊으며 다가온다. 조심해야 한다. 속으면 안 된다. ‘얘는 어린이가 아니야’라고 속단하는 순간, 읽는 내가 어린이로 변해 있고, ‘이건 동시가 아니야’라고 오판하는 순간, 주변의 글자들이 모두 동시로 변할 수 있다. 눈으로 찍힐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감상해야 한다.
이정이 / 시와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