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규 에이디테크놀로지 대표 인터뷰
TSMC와 쌓은 15년 업력, 삼성 파운드리 강점으로
"삼성 GAA 공정, 3나노 격전지서 TSMC 잡을 기회"
"향후 건강한 수익 구조 기대, 2030년 매출 1조원 목표"
"삼성과 TSMC의 핑퐁게임은 3나노미터 공정을 시작한 이제부터 시작인데, 그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디자인하우스가 가진 역량이라 봅니다. 어떤 디자인하우스냐에 따라 파운드리 고객사가 수주한 칩 효율이 달라져요. TSMC와 15년간 일하며 쌓은 경험치란 삼성 파운드리에 힘을 실어줄 엄청난 도움입니다. 삼성 파운드리가 단번에 TSMC를 뛰어넘기란 힘들지만 야금야금 조금씩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출발 지점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
지속적인 시장 수요 부진 등으로 인해 나날이 '위기'라는 인식이 쏟아지고 있는 국내 파운드리 산업과 관련해 '충분한 가능성'을 말하는 전문가의 목소리다. 주인공은 삼성전자의 최대 디자인하우스 파트너이자 해당 분야의 국내 1위 기업인 에이디테크놀로지를 이끌고 있는 박준규 대표.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 본사 사옥에서 만난 박 대표는 "우리가 익힌 TSMC의 장점을 바탕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기술적 접근은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를 이끌 충분한 이점"이라고 전했다.
지난 2002년 설립된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최근 업계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기업이다. 파운드리 업계 부동의 1위 TSMC를 잡겠다는 삼성전자 옆 마치 '숨은 조력자'로만 여겨졌던 디자인하우스의 역할이 커지면서다. 시스템 반도체 밸류체인 공정 전반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져온 결과다. 아울러 디자인하우스 중에서 글로벌 1~2위를 다투는 TSMC와 삼성전자 양사를 모두 경험해 본 독특한 이력은, 에이디테크놀로지가 국내 파운드리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를 낳게 하는 또다른 포인트다.
박준규 대표는 1992년부터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반도체 개발 경험을 쌓은 뒤 2005년 에이디테크놀로지에 합류해 현재 회사 방향타를 쥐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태계를 가장 정확히 꿰뚫는 전문가다. 박 대표는 삼성 파운드리 산업 성공과 관련해 디자인하우스 역할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어떤 디자인하우스가 일감을 수주하느냐에 따라 파운드리 고객사가 수주한 칩효율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디자인하우스가 단순 가교 역할에서 벗어나 그 위상이 바뀐 변곡점에 대해 "공정이 복잡해지면서 팹리스 고객 입장에서 이를 파운드리 레시피에 맞게 전환해주는 중간 엔지니어링이 필요해진 것과, 큰 기업과 스타트업이 뛰어드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발생한 공통 수요의 확장이 맞물리며 디자인하우스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했다. 국내에서 반도체 디자인하우스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7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출범하기 시작하면서다.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가 만든 반도체가 생산될 수 있게 파운드리 공정에 맞는 디자인으로 칩을 재설계한다. 삼성이 크고 작은 고객사를 모두 상대하기 어려운 만큼, 중간에서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들이 주문형 반도체 설계와 후공정 연계 서비스 등을 종합 지원하는 우군 역할을 맡는다. 이는 TSMC가 운영하는 가치사슬협력사(VCA) 그룹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35년 넘게 순수(Pure) 파운드리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TSMC의 성장 뒤에는 이같은 VCA의 지원이 있었다.
업계가 주목하는 에이디테크놀로지의 이색적인 이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15년간 TSMC의 파트너였다가 2019년 이후 삼성의 최대 협력사가 됐다. 과감한 전환인만큼 주변의 우려도 많았다. 박준규 대표는 "TSMC의 영업 정책상 우리의 성장에는 제약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계를 없애기 위한 모멘텀이 필요했고, 마침 TSMC보다 뒤늦게 파운드리에 뛰어든 삼성에게 우리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고 했다. 마침 지난해부터 팹리스-디자인하우스간 턴키 계약이 가능해지며 해외 팹리스 물량을 수주해 삼성으로 유인하는 3자 비즈니스도 가능해졌다.
"삼성과 TSMC의 각자의 특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삼성 파운드리의 설계 강점을 찾아내는데 2년 넘게 공을 들였죠. 쉽진 않았습니다. 당장 회사 매출은 2021년 30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600억원으로 내려왔습니다. 다만 이는 '준비된 적자'라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지난해부터 클라우드 서버, 고성능컴퓨팅(HPC) 등 분야에서 고객사 발굴 성과를 내고 있어요. 개발 비중을 올리고 2~3년 안에 고객을 다변화해 건강한 매출 구성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삼성전자의 DSP는 총 9개사다. 그렇다면 에이디테크놀로지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뭘까. 박준규 대표는 가장 먼저 "안정적인 규모로 인한 아낌없는 신규 투자가 가능하다"며 "20년 이상 일해왔고 상장이나 흑자 구조로 오면서 회사가 굉장히 안정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변 설계자산(IP)과 셀 라이브러리 에코 시스템이 TSMC보다는 삼성이 조금 부족하기에 해당 부분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자동차와 인공지능(AI), 고성능컴퓨터(HPC) 분야 플랫폼 부분에서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전문 기업 ARM과 공식디자인파트너(AADP)로 협업 중이다. 아울러 여타 디자인하우스와 달리 최선단 공정 설계를 비롯한 2.5D, 3D 패키징과 같은 기술 역량을 보유 중이다. 박 대표는 "최근 반도체 업계 화두인 2.5D, 3D 패키징을 삼성과 협업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저희가 독점적으로 끌고갈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최근 파운드리 산업 승부와 관련해 중요한 척도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첨단 패키징이다. 3나노 경쟁까지 온 이상 나노 경쟁보다는 패키징을 통한 고객사 칩 성능 극대화가 관건이라는 관측이다. 첨단패키징은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새겨진 칩을 잘라 기기에 연결 가능한 상태로 가공하는 '일반 패키징'을 넘어 이종(異種) 반도체를 연결하거나 개별 칩을 적층하는 등의 최신 공정을 의미하는데, 일각에선 TSMC와 삼성의 격차가 10년 이상이라고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듯 박 대표는 "2~3년 내 따라잡을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기존에 삼성도 패키징 사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비즈니스화를 하지 않은 것 뿐"이라며 "1~2위를 좁히는 타이밍이 곧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를 두고는 "삼성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다. 아울러 에코시스템을 잘 갖춘 TSMC 역시 3~4나노 경쟁으로 가면 그렇게 파트너가 많지는 않다"고 했다. 격차를 좁히는 것이 충분히 현실성 있다는 이야기다.
치열한 전장이 될 '3나노' 이후부터는 TSMC와 삼성전자의 경쟁 조건이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그는 삼성이 지난해 6월 세계 최초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것도 첨단 공정에서 TSMC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내다봤다. 박준규 대표는 "여기에 충분히 고객들이 원하는 칩 생산 능력과, 삼성에 대한 특화 교육을 통해 결과적으로 수율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삼성 파운드리와의 이같은 공동 목표와 함께 자사 2030년 매출 1조원 목표도 세운 상태다. 박 대표는 "고객 제품 개발 양산-공급이라는 디자인하우스 특성상, 어떻게 시장에 대비하느냐라는 부분과 동시에 많은 과제 수행을 할 수 있는 캐파를 늘려놓는 부분도 중요하다"며 "2019년 TSMC에서 삼성으로 터닝하며 준비했던 것들이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양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25년 이후로 매출 폭도 상승할 것으로 본다. 5년 안에 파운드리 생태계가 재편되며 안정화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덧붙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준규 대표는 회사가 2019년 TSMC 디자인하우스파트너인 VCA 지위를 내려놓고 삼성전자 DSP 생태계에 진입하기까지 대부분의 과정을 지휘했다. 현재는 창업주인 김준석 대표와 각자 대표 체제로 국내 디자인하우스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설계 및 디자인서비스를 위한 사업을 전사적으로 구축 중이다. 회사가 예측하는 터닝 포인트는 2025년으로, 연매출 3000억 초과 달성 목표와 함께 임직원수 역시 현재의 두 배 가까이 해당하는 1000명 상당으로 확충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