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권위 있는 차트로 꼽히는 빌보드 차트에 케이팝(K-POP)이 이름을 올리고,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투어 콘서트를 펼친다. 케이팝이 더 이상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케이팝 씬에서는 아티스트와 음악을 넘어 케이팝 ‘시스템’까지 수출하면서 현지화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인 하이브는 세계 3대 메이저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게펜 레코드와 손잡고 지난 29일 미국 LA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IGA 스튜디오에서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의 시작을 알렸다.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는 하이브가 세계 3대 메이저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UMG)과 손잡고 만든 합작사 ‘하이브 x 게펜 레코드’가 주최하는 글로벌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케이팝 대표 기업과 미국 일류 레코드 레이블이 케이팝 트레이닝 및 개발 시스템을 모델로, 미국 현지 기반의 글로벌 걸그룹을 선보이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이제는 세계적인 현상이 된 케이팝 방법론을 적용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하고 재능있는 인재들을 초대해 약동하는 집단을 창조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면서 “오래전부터 케이팝 방법론을 기반 삼아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인재들을 육성하고, 이들과 함께 케이팝 스타일의 ‘글로벌 그룹’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오디션에는 전 세계에서 12만명이 지원했다. 6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20명의 참가자들이 본격적으로 경합을 앞두고 있다. 연습생들은 한국, 미국, 일본,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위스, 스웨덴, 슬로바키아, 벨라루스, 호주, 태국, 필리핀 등 12개 지역 출신으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만큼 이들의 활동 역시 미국에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케이팝 시스템 수출로 현지화 전략을 꾀한 건, 하이브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8년 JYP엔터테인먼트는 중국 현지화 보이그룹 보이스토리를 데뷔시킨 데 이어, 2020년 일본 현지화 걸그룹 니쥬를 선보이면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현재는 니쥬를 탄생시킨 오디션 ‘니지 프로젝트’의 시즌2를 통해 보이그룹 선발을 진행 중이다.
하이브 역시 이번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에 앞서 일본 현지 레이블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을 통해 보이그룹 앤팀을 데뷔시켰다. 9명 멤버 중 한국과 대만 출신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7명은 일본인이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들의 주무대는 일본이다.
SM엔터테인먼트도 NCT의 서브 그룹을 현지화 전략에 활용했다. 2019년 중화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보이그룹 웨이션브이를 탄생시키고, 이들은 2020년 NCT에 공식적으로 합류시켰다. 현재는 ‘NCT 유니버스: 라스타트’ 방송을 통해 일본에서 활동할 NCT 새 팀 데뷔조 결성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애초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도쿄팀에 이어 NCT 할리우드, NCT 사우디 등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가 SM을 떠나게 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도쿄팀을 끝으로 종료된다.
이밖에도 한국 연예기획사 쇼비티가 필리핀에 진출해 선보인 필리핀 5인조 그룹 SB19, CJ ENM이 일본판 ‘프로듀스 1010 재팬’을 통해 선보인 제이오원(JO1) 등도 현지화 전략을 통해 탄생한 그룹들이다. 다만 이 시기엔 대부분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권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동남아를 넘어 미국 시장을 비롯한 전 세계를 아우른다는 것이 특징이다.
업계에선 하이브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케이팝 제작 시스템의 수출 사례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현재 JYP엔터테인먼트도 미국 리퍼블릭 레코드와 손잡고 에이투케이(A2K) 오디션을 진행했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주일간 열린 ‘부트 캠프’(훈련소)를 통해 선발된 최종 10명의 참가자는 JYP 본사에서 최종 데뷔 멤버 선발을 위한 트레이닝에 돌입한다.
엔터테인먼트들이 잇따라 현지화 전략을 꾀하는 건, 지속적인 케이팝 시장의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어마어마한 시장 규모를 가진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려도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케이팝의 현지화 전략은 나중을 위해 분명 필요한 수순”이라면서도 “다만 그 과정에서 자칫 뿌리가 흔들리면서 팀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하고, 해외 팬들은 물론 국내 팬들이 역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