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시행 9개월째 맞이..모금 실적 여전히 저조
과도한 홍보 제한 규제 속 행정안전부 플랫폼 고향사랑e음 효과도 미미
유명무실한 관련 박람회 참가 요청으로 지자체들 지출과 사무만 늘어
고향사랑기부제로 해마다 8조 기부금 이끄는 일본 성공 사례에서 해답 찾아야
“고향과 국민을 잇겠다”는 것이 정부의 고향사랑기부제 추진 방향이자 목표였지만, 아직까지 고향과 국민을 잇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개인이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고향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세액공제 혜택과 답례품을 받는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된 지 어느덧 9개월째를 맞이했다. 지방소멸 위기 대응 및 해소 차원에서 도입된 이 제도는 시행 8개월이 경과한 지금도 국민들로부터 기대했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BTS(방탄소년단) 멤버 지민(부산 남구), 제이홉(광주 북구), 그리고 ‘국가대표 캡틴’ 손흥민(춘천시) 등 한국에서 핫한 스타들까지 고향사랑기부금을 쾌척했지만, 고향사랑기부제의 모금 성과는 여전히 저조하다.
각 지역 고향사랑기부 전담팀 관계자들에게 실적을 물어보면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다. 해당 단체장들도 “(홍보 방식 제약 등)어려운 여건에서 목표치 절반 내외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이것도 선방한 지자체에서 나올 수 있는 답이다.
모금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 지자체가 늘고 있는 것을 볼 때, 성과가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주무부처 행정안전부의 각종 규제로 인해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홍보의 강도와 폭을 넓힐 수 없는 태생적 제약 아래서 각 지자체들은 성과를 발표해야 하는 내년 초를 앞두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모금액 공개는 시행령에 의해 2024년 2월에 한다).
지난 6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39개 지자체 평균 기부 520건·평균 모금액 6815만원 수준이다.
해마다 8조 규모의 고향사랑기부금이 찍히는 일본과는 너무 큰 차이다. 물론 시행한 지 13년 된 일본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고향사랑e음'과 같은 시스템 확충 등 우리와 비슷한 조건을 갖춘 2015년(온라인 모금-원스탑 특례) 당시 일본서는 평균 기부 4060건·평균 모금액 8억 3500만원이 찍혔다. 시행 첫 해라고는 하지만, 우리와 너무 큰 차이다.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우리 지자체들이 현재와 동일한 속도로 모금을 한다면 1/8 수준, 연말에 모금이 2배 정도 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도 1/4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아쉬움과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08년 고향사랑기부제를 시작한 일본은 지난해 모금액 총 8조 7000억원. 시행 초기에 비해 모금액 규모가 100배 늘었다. 단순 계산했을 때 국민 3명당 1명이 고향사랑기부제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일본도 처음부터 실적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의 시의적절한 제도 보완이 급성장을 불러왔다는 평가다. 일본 정부는 자판기·편의점 납부까지 도입할 만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2015년에는 세금 환급과 관련해 원스톱 특례제도를 신설, 정기급여자가 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자동으로 신고 되어 기부 프로세스를 쉽게 만들었다.
지역소멸 위기 시대다. 고향사랑기부제가 힘을 보탤 지역의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우리 고향사랑기부제도 서둘러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통합(원스톱) 정보시스템 ‘고향사랑e음’이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 신속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규제를 풀어나가야 할 때다. 지금의 ‘고향사랑e음’ 플랫폼으로는 잠재 기부자들의 접근성과 편의성, 그리고 홍보 효과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결국 제도가 활성화 된 일본의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일본은 2014년 민간 업체에도 답례품 플랫폼 운영을 할 수 있게 하면서 기부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로 인해 민간업자들의 다양한 이벤트와 효과적인 정보 제공 방식이 더해지면서 기부금액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굵직한 계기를 마련했다.
개선할 부분은 비단 모금 수단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고향사랑기부제 기부금 연간 상한액은 500만원이다. 반면 일본은 기부금 상한이 없다. 소득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액공제를 받도록 설계돼 고소득자의 기부를 유도하고 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도 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들의 참여를 허용하며 한도를 대폭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
개선되지 않은 문제들로 지자체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불합리한 지출 구조는 지친 지자체의 한숨을 부른다.
한 자자체 관계자에 따르면, 고향사랑e음 분담비는 3700만원 가량(구축비 2,890만원, 운영비 834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중앙정부와 중앙 및 지방언론의 고향사랑기부제 관련 박람회 참석 요청까지 수용하면 모금액 대비 남는 것이 없다. 강원도 A지자체는 분담비, 박람회 2회 참석(각 1,000만원), 업무추진을 위한 용역 및 홍보 비용 등의 명목으로 1억 이상 지출했지만, 모금액은 훨씬 못 미친다. 호남권 B 지차제도 동일한 상황이다. 기초지자체 부담을 줄여주고자 광역지자체가 행정안전부 주재 ‘고향사랑의 날’ 박람회 비용을 분담할 정도다.
대통령 등 주요 인사가 방문하지 않는 박람회가 모금과 홍보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행안부와 중앙 및 지방언론의 박람회 개최가 이어져 비용 지출과 사무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행안부는 고향사랑의 날 행사에서 “컨텐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자체에 무대 행사, 각종 강연회 등을 요구한다. 유명무실한 박람회 행사에 동원돼 콘텐츠까지 채워야하는 삼중고를 겪는 셈이다.
모금의 권한은 지자체가 가졌다고 하지만, 갑에게 둘러싸인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업무를 주도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저조한 모금 실적으로 내년 예산 편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도한 규제 탓에 주체가 되어 홍보할 수 있는 방안이 사실상 전무한 환경에서 저조한 기부실적은 공개해야 하는 부담만 커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앞서 소개했던 일본과 같은 제도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