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통한 정부 발목잡기 관례 우려
헌재 결정까지 장관 공백 피해는 국민
법관 탄핵 통한 '사법부 길들이기'도
이종섭 선제 '사의'로 일단 탄핵 제동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탄핵소추안에 제동이 걸렸다. 이 장관이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사실상 탄핵의 실익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 다수당의 탄핵 남발이 국정 공백 초래는 물론이고 나아가 대통령 인사권까지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의 탄핵권은 정부의 위법이 명백할 경우 이를 견제하기 위한 입법부의 최후의 수단으로 마련된 것이지 야당이 불리할 때마다 국면 전환용으로 쓰라고 만든 제도가 아니다"며 "하루도 자리를 비워선 안 되는 국방부 장관을 탄핵해서 기어이 안보 공백 사태를 만들려 하는 것이 기가 막힌다"고 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는 헌법 65조에 규정돼 있다.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를 요건으로 한다. 다만 단순 위반이 아닌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이 있어야 한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판례다. 의결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경우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그 밖의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은 과반 찬성으로 가능하다.
문제는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 의결 정족수가 과반이다 보니 151석의 다수당이 언제든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적 후폭풍과 여론 악화 등을 고려해 역대 정당들은 탄핵 추진을 절제해왔다. 하지만 정쟁이 극에 달할 경우, 탄핵안 가결을 통해 정부의 발목을 잡는 선례가 만들어져 국민의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 2월 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을 강행한 바 있다. 정치적 책임을 떠나 이태원 참사 대응 과정에 헌법과 법률 위반이 드러난 게 없었음에도 밀어붙였다. 국무위원에 대한 최초의 탄핵소추였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는데, 결정이 나오기까지 약 6개월 동안 행안부는 초유의 장관 공백 상태를 맞았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이날 이례적으로 후임자가 지명되기도 전에 사의 표명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민주당이 탄핵안을 강행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개각 구상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간 국방 공백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KBS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탄핵 절차로 넘어가게 되면 결과와 무관하게 수개월 간 초유의 국방부 장관 공석 상황이 오게 될 것을 장관이 걱정한 것으로 안다"며 "행안부 장관의 공백 상황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그것 만큼은 막기 위해 깊은 고민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국방부 장관 인사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에서 굳이 탄핵을 서두르는 이유는 대통령의 인사권 제한을 통해 국정 흔들기를 시도하고 사면초가 상태인 당의 난국을 탄핵 이슈도 돌파하겠다는 정략적인 계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철규 사무총장도 "거대 의석을 앞세워 탄핵소추안을 강행했지만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던 불법 탄핵 전례를 벌써 잊었느냐"며 "이재명 대표의 불체포특권을 보장하자고 온갖 억지를 부리더니 이번에는 안보 공백이 발생하든 말든 이재명 하나 지키자고 국민의 안전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여당 시절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도 강행했던 전력이 있다. 임 판사의 임기가 만료돼 소의 이익이 없고, 탄핵의 근거가 된 재판관여 의혹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다수의 힘으로 관철시켰다. 이 역시 법관에 대한 최초의 탄핵이었다. 헌재는 "소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했지만,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탄핵을 통해 사법부 길들이기가 가능하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국회는 여야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마다 과거 선례들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국민 여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국무위원과 법관 탄핵의 선례가 만들어졌기에 앞으로 151석을 갖게 되는 정당은 탄핵 카드를 가지고 얼마든지 정부 혹은 법원을 압박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