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가치 반년 만에 최고
中·日 통화 약세에 원화 '발목'
환율·유가·물가 '3高' 겹악재
킹달러 재현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고 중국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쏠리고 있어서다. 미국 달러화 가치가 6개월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은 가운데, 엔화와 위안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며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흐름이다.
고유가와 달러 강세가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등 이른바 3고 현상으로 인해 경기 침체 먹구름이 더욱 짙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달러인덱스는 지난 12일 104.71로 마감했다. 달러인덱스는 미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유로화 등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수로 100을 넘어가면 달러가 강세라는 의미다.
달러 인덱스는 지난 7월 중순께 1년 3개월 만에 100밑으로 떨어졌지만 슬금슬금 올라 지난 6일에는 장중 105를 터치했다. 달러 지수가 105를 넘본 것은 6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두달 전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까지 떨어지며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긴축 기조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인식이 컸지만 미국 신용등급 강등 등을 시작점으로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강달러 현상은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부진을 면치 못하는 중국, 유럽의 격차가 확대되는 탓이 크다. 미국과 한국, 일본 등 금리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에 투자자들이 달러에 베팅하고 있어서다. 또 중국 부동산 위기에서 비롯된 차이나 리스크는 한중일 화폐 가치 하락에 여파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 원화 가치와 연동되는 위안화와 엔화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8일 기준 역내 달러 대비 위안 값은 7.3위안대로 1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위안화 약세는 리오프닝에도 중국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과 중국 부동산 업체 파산 우려가 배경이 됐다.
엔화 값도 기록적인 수준으로 낮아졌다. 지난 8일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7.8대까지 올라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긴축을 이어가는 미국과 초저금리 정책을 이어가는 일본과의 금리차에 자금 이탈 우려가 작용했다.
원화 가치는 맥을 못추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전거래일 대비 3.3원 내린 1327.8원에 마감했다. 중국과 일본 중앙은행이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원화도 1330원대에서는 소폭 내려갔지만 지난달 초 1300원대로 올라선 이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1300원대는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나타나 한국 경제의 위험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달러 가치가 초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국제 유가가 치솟고 있는 점은 경기침체를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 연장 결정이 국제 유가 상승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런 고유가 상황은 우리나라 수입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이것이 고금리 기조 지속으로 이어지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
실제 원·달러 환율과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우리나라 수출입 물가가 1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물가지수는 117.52로 전월 대비 4.2% 올랐는데, 이는 지난해 3월(6.2%)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른 가운데 석탄및석유제품, 화학제품 등이 오른 영향이었다.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도 4.4%오른 135.96으로 오름 폭이 지난달 3월 이후 가장 크게 올랐다.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광산품, 석탄및석유제품 등이 올랐기 때문이다.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강달러로 인한 환율 상승과 고유가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부진한 경기 흐름과 맞물리면 한국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성욱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수입물가는 1~3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이나 기업의 가격 상승분에 대한 전가 속도, 전가 폭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