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영화 ‘30일’ 개봉 앞두고 유쾌한 화법 빛나
인터뷰이(interviewee․인터뷰 대상자) 강하늘이 달라졌다.
영화 ‘청년경찰’(2017) 인터뷰 당시 도덕책에서 걸어 나온 선비처럼 바른말만 하던 강하늘이 아니다. 한없이 부끄러워하며 머쓱해하던 그도 아니다.
영화 ‘30일’(감독 남대중, 제작 영화사 울림, 배급 ㈜마인드마크)로 만난 배우 강하늘은 어떠한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하고,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강하늘 그대로를 드러냈다. 자신감이 느껴졌고 덕분에 인터뷰 시간은 유쾌했다.
오해하자면 할 수 있는 말도 있었고, 잘못 전하면 불리한 말도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말에 전혀 악의가 없다는 걸 라운드 인터뷰에 참석한 기자들이 알고 있음을 믿고 꾸밈없이, 머리 쓰지 않고 말하는 모습이 좋았다.
구체적으로 적어 보자면 이렇다. 왜 SNS를 하지 않나요?
“사진만 올리기엔 버르장머리 없어 보일 듯하고, 짧게 쓰자니 성의 없는 것 같아서 길게 쓰다 보니 누가 ‘일기 쓰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SNS는 너무 노력을 요해요, 저라는 사람한테는 SNS를 하는 게 그래요, 사실상 알고 싶은 내용도 없고요.”
예의바른 청년, 경우의 수가 1만 가지라면 그것을 다 살펴 누구에게도 실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강하늘에게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인터넷 세상에 사진 하나 올리는 일도 이렇게나 어렵구나,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그런데 ‘사실상 알고 싶은 내용도 없고요’라고? 이 부분은 민감할 수 있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얘기를 나누다보면 금세 안다. 첫째,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덧붙일 만큼 대답에 성실하고 가능한 자신을 열어 보이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 둘째,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사람이라는 것. 스스로 밝힌 대로 강하늘은 MBTI로 하면 극적으로 I, 내성적 인간형이다.
어느 정도로 내성적인가 하면 다음 얘기를 들어보면 가늠이 된다.
“연애요? (연인이 된) 그분도 집에서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면 좋겠어요. 제가 극 I 성향이라 쉴 때 집에 있는 거 좋아하는데, 그분도 집에 가만히 있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분이면 좋겠어요. (강하늘은 집에 있고, 연인 혹은 아내는 밖에서 놀라고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혼자 놀게 하기 미안해요, 신경 쓰여요. 그냥 성향이 비슷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내성적인 사람이 어떻게 사람들 앞에 나서는 연예인이 됐을까.
“유명세라는 게, 어렸을 때 가장 큰 딜레마가 그거였어요. 지금도 많은 나이는 아닌데, 조금 더 어렸을 때요. 제가 가지고 있는 성향이 남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좋아하는 게 연기고요. 연기하려면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서야 하잖아요. 진짜 솔직히, 연극이 끝나면, 작품 공개가 지나면 사람들이 저를 모르시면 좋겠어요, 근데 말이 안 되잖아요. 많은 분이 저를 아셔야 다음 작품도 찍을 수 있는 건데…, 딜레마였죠. 어렸을 때는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어리둥절했다면, 지금은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시간, 공간’과 ‘연기할 때의 모습’을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연기할 때는 문 열고 많이 소통하고 놀고, 연기 끝나면 다시 문 닫고, 그게 가능해져서 쫌 음 정리가 됐어요.”
문을 열고 연기한 영화 ‘30일’의 노정열 캐릭터와 사람 강하늘은 닮아 있을까요?
“영화 캐릭터에 제 의지 70퍼센트 이상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연기하다 보니, 제 몸의 어떤 부분을 빼서 연기하다 보니, 그렇게 됐을 것 같아요. (그럼 강하늘은 노정열처럼 쪼잔한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누구나 ‘쪼잔하지’(마음 씀이 좁지) 않은가요, 모든 사람은 쪼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가장 가까운 연인에게는 더 드러나고요. (정열이처럼) 뒤끝은 없어요, 뭔가 ‘하나에 꽂혀서’ 이러는 게 없거든요.”
20대 나이에 영화 ‘스물’에 출연했던 강하늘이 무한경쟁의 배우 생태계에서 살아남아 30대를 맞아 영화 ‘30일’을 책임지는 배우가 됐다. 강하늘의 ‘배우 나이’가 달라졌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할까.
“나이 먹는다는 느낌을 느끼긴 하죠. 카메라가 돌아가고, 렌즈 사이즈가 어떻고 각도가 어떻고 조명이 어떻고를 알아갈 때, 어느 정도 이제는 현장이라는 것에 대해서 경험이 점점 쌓이는 구나 싶어요.”
“제가 그렇게 역경을 딛고 30대 연기자가 됐다고, 제 자리가 있다고 봐 주셔서 감사하고요. 내 힘이 아니었다고 항상 생각해요. 얼마 전에 나영석 감독님 (유튜브) 라이브에서도 한 말인데, 겸손 떨려는 게 아니라 ‘운이 잘 닿은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운이 닿을지 닿지 않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배우의 명암이 운에 달렸다고요?
“요 장면 요 신(scene, 장면)에 최선 다하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해요. (성공 등) 미래의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어떤 배우로서 이상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에 충실하자는 느낌인 거예요.”
“(흥행이 돼야 다음이 있지 않느냐는 되물음이 나오자) 점점 작품을 해가면서 그런 생각이 확고해져요, 연기자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가. 점점 더 해야 할 몫이 흥행과는 멀어지더라고요. 흥망은 우리 (영화인들) 손을 떠난 문제예요. 저는 연기에 최선을 다했으니 그 다음 단계는 그 분야 전문가들이 해 주시고, (흥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관객 분들이 결정해 주시는 거죠. 배우인 저는, 그날 그 촬영을 잘하는 게 연기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앞으로 어떤 역할로 만날지 모르지만, 그 장면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 몫이라고 생각돼요.”
또 나왔다, 오해 유발 가능성 발언^^. 말하는 사람이 강하늘이라는 걸 배제하고 내용만 들으면, ‘나는 내 연기에 최선을 다할 뿐 영화는 망하든 흥하든 난 모른다’로 오해할 수 있다. 물론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강하늘은 인터뷰 중간 중간 연신 “저는 연기를 끝냈지만, 제작자나 투자자 분들은 최소한 제작비를 회수하셔야 하니, 홍보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했다.
필자에게 전해진 강하늘의 생각은 이랬다. 보통의 우리에게는 어떤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기 위해선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우선 나를 위해. 부자가 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더욱 완벽하고 멋진 모습의 내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산다. 또, 우리 부모님을 위해, 자식을 위해, 친구를 위해, 동료를 위해, 거창하게는 우리 사회와 나라를 위해…라는 명분이 우리에게 박차(말 탄 사람의 구두 뒤축에 달린 톱니모양의 쇠)가 된다. 말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면 말이 속도를 빠르게 내듯, 명분이 우리의 열심도와 성실성을 높인다.
미래의 좋은 모습이나 이상적 목표를 상정하지 않은 채 그저 나의 일이므로, 내가 할 일이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사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면 어느 학생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모든 직장인이 맡은 바 업무에 매진할 것이다. 그런데 강하늘에게는 ‘배우로서 지금 내가 해야 할 내 몫의 일’이라는 게 내 몸의 어떤 부분을 빼내 캐릭터에 담을 정도로 최선을 다할 이유가 된다는 얘기다.
이 정도면 ‘저는 연기에 최선을 다했고, 흥행은 내 손을 떠난 일이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래도 대중의 사랑 속에 30대에도 배우로 살고 있으니, 운이 잘 닿은 거죠’라고 세상을 초탈한 강태공처럼 말해도 된다.
이어서 했던 말, ‘앞으로 운이 닿을지 아닐지 모르겠다’는 말. 처음엔 어떤 모습의 배우 혹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선 배우로 미래를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지금부터 아등바등하지 않는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심지어 배우로서 도태되어 배우로 살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까지, 폭 넓게 미래를 열어 두고 있음에 놀랐다.
“나이 드는 거 좋아요. 어릴 때도 이 나이를 바랐고, 더 위로 올라가도 재미있고 좋을 것 같아요. 저는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40대의 얼굴이 돼도 지금처럼 많이 웃고 그렇게 지내고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내가 40대의 얼굴로 웃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되니까요, 웃고 있으면 좋겠네요. 어떤 일을 하고 있건 간에 재미있게, 즐겁게 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뭘 하든 재미있게 웃으며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미래에 대해 특정하게 그리는 모습이 없다는 말을 은연중 반복하는 걸 보니 진심이다. 필자의 귀에 크게 들린 부분은 당당히 주연급, 스타로 살고 있는 배우가 자신이 10여 년 뒤 배우가 아닐 수도 있음을 먼저 받아들이고 있는 대목이었다. 흔히 우리는 올라가는 건 잘해도 찬찬히 내려올 줄을 몰라서, 내리막길을 벼랑 끝으로 인식해 크게 겁먹거나 드물게는 ‘추락’을 택하기도 한다. 인생은 잘나갈 때가 아니라 위기를 잘 관리하는 사람에게 관대하다는데, 그래서 강하늘의 얼굴에 심적 여유와 미소가 떠나질 않는가 보다.
같은 맥락에서 40대의 얼굴로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는 건, 결코 비관적 언사가 아니다. 미래에 대해 미리 답을 내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현재, 오늘 촬영할 장면에 집중하며 사는 강하늘이다 보니 단지 미래의 그날이 상상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플레이어다운 철학이다.
더불어 무슨 일을 하든 즐겁게, 웃으며 하고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간의 기본, 인생 행복의 바탕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진심에 감동했다. 평소 강하늘을 만나면 ‘미담제조기’라는 별명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하고 싶었던 필자였는데, 지금 또 하나의 미담을 적은 셈이 됐다.
기자가 물은 건 이거였다. 배우 강하늘의 정체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개인적으로, ‘순수한 마음’ 같습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황용식의 순수함이 동백이(공효진 분)와 시청자의 마음을 열었고, 이번 영화 ‘30일’에서도 기억을 잃은 후 백지 상태에서 상대(홍나라, 정소민 분)를 먼저 순수하게 바라보는 쪽은 노정열이에요. 다른 배우가 했다면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나라를 향한 호감이 순수하게만 보였을까, 나라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싶어요.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기본 스토리 진행과는 별도로 중요한 차이,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가 느끼기엔 너무 좋은 칭찬이셔서 감사드리고요(볼 빨간 머쓱함). 정체성은 제가 잘 모르겠고, 그냥 어떤 작품을 하든 간에 목표는 있어요, 이게 제 정체성을 얘기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작품보다 역할이 먼저 보이게 하지 말자!’, 그게 저의 마인드 컨트롤입니다.”
“연기자한테는 스토리진행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지만은, 저는 ‘배우는 스토리 전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글로만 읽기 심심해서 목소리가 들어가고, 목소리만 들어가면 심심해서 또 행동이 들어가고, 그게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재밌게, 맛있게 전달해 주는 게 연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이 글보다 앞서가거나 이 작품을 넘어가려고 하면 제가 항상 브레이크가 걸리더라고요, 걸려 넘어져요. 말하기 되게 애매하고, 현장에서만 느끼는 생각인데, 현장에서 작품 밖으로 넘어가지 않으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멋지다. 배우로서의 정체성보다 작품이 먼저 보이게 하자는 목표를 중시하고, 배우의 기본은 스토리 전달에 있음을 명심하고 나를 뽐내기 위해 작품을 넘어서지 않겠다는 배우철학. 배우 강하늘과의 인터뷰는 마치 청년 철학자와의 대화 같았다. 그런데 놀라운 건, 결코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는 것, 인터뷰 장에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 경험에서 배우고 오랜 사고로 숙성시킨 생각을 진솔한 표현과 유쾌한 유머로 전할 줄 아는 강하늘 덕분이다.
그런 강하늘이, 함께 출연한 윤경호의 표현을 빌자면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 같은 코미디 연기를 펼친 영화 ‘30일’은 한가위 연휴 마지막 날인 10월 3일 개천절부터 관객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