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와 양자회담서
묻지도 않은 방한 언급
'목표' 아닌 '과정'으로
시 주석 방한 추진돼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년 만에 한국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간의 한중관계 부침을 되짚어 보면, 시 주석 방한은 새로운 양국관계를 상징하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임기 내 대북성과에 올인했던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대북관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몸을 낮추고 또 낮췄다. 문 전 대통령은 두 차례 중국을 찾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외교 관례상 시 주석 답방이 먼저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문 전 대통령은 꿈꾸고, 기대하고, 바라고, 기다렸다. 하지만 '님'은 오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날, 중국은 당시 '권력서열 2위' 왕치산 부주석을 보내 윤 대통령의 방중을 제안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시 주석 방한을 역제안했다.
외교가에선 '시 주석의 황제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이 한국의 새로운 지도자를 과거 조선의 왕 정도로 하대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첫 접촉부터 입장차를 확인한 한중은 1년 넘게 양국관계의 '마지노선'을 탐색해 왔다. 한국이 "힘에 의한 현상변경에 반대한다"는 '규칙 기반 질서'를 강조하며 대만 문제 등에 원칙적 입장을 밝히면, 중국은 "말참견을 허용 않는다"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것은 오판"이라고 맞받았다.
그토록 뻣뻣했던 중국이 최근 들어 유해지고 있다. 시 주석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직접 만났다. 시 주석은 양자회담에서 한국 측이 묻지도 않은 방한까지 거론했다.
중국이 움직인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결정적 계기는 '역내 도전 의식'을 조율한 한미일 정상회의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3국 정상회의 성과와 관련해 "중국발 도발과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 대한 우려 인식에 있어 한미일이 상당히 일치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일찍이 중국을 역내 도전으로 규정한 미일과 달리, 한국은 그동안 중국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한국도 미일과 '같은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중국에 대한 '입장정리'를 매듭지은, 한국의 '전략적 명료성'을 중국도 명확히 인지했을 것이다.
시 주석의 방한 언급은 유의미하지만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한국이 미국 주요 동맹 중 약한 고리라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 주석이 방한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
시 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보다 윤 대통령을 먼저 만날 리도 없다. 한국 총선을 앞두고 방한을 택할 리는 더더욱 없다. 총선 전 방한이 한국 국민들에게 어떻게 '해석'될지 시 주석 스스로 너무 잘 알 것이다.
상호존중, 호혜, 공동이익으로 요약되는 새로운 한중관계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접어들었다. 규칙 기반 질서 수호를 골자로 하는 한국의 전략적 명료성을 중국에 끊임없이 각인시켜야 한다. 시 주석 방한은 목표 아닌 과정으로, 양국관계의 명확한 마지노선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