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없는 감옥' 불려온 지역에 빈곤 등 생존위기 맞아
이스라엘, 가자지구 주변통제권 회복…예비군 30만 동원
이스라엘 사망자 700명 넘어…팔레스타인도 560명 사망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통치 중인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가자지구를 완벽하게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하마스와의 교전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남부 베르셰바에 있는 남부군사령부를 방문해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봉쇄를 지시했다”며 “전기도, 음식도, 연료도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폐쇄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마스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표현하며 “우리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과 싸우고 있다”며 “따라서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에너지부 장관은 즉각 가자지구에 공급되는 물을 차단하라고 명령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그동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로부터 연간 물 사용량의 10%가량을 공급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잦은 공격과 오랜 봉쇄로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이라고 불리며 빈곤에 허덕여온 230만명의 가자지구 주민이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과거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이듬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무기제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생필품 등 물자 반입을 차단했다. 가자지구에 대한 전력 공급도 통제해왔다.
이 때문에 가자지구의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실업과 경제난, 생필품 공급 부족, 극심한 식수 및 전력난에 시달려왔다. 올해 2분기 기준 가자지구 실업률은 46.4%에 이른다. 국제사회에 대한 자금 지원 의존도는 계속 높아졌다.
특히 지난 48시간 동안 30만명의 예비군이 동원되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며 대규모 전투에 나설지 여부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가자지구의 민간인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와의 접경지대에 있는 마을 24곳에 소개령을 내리고 민간인 대피를 끝냈다. 이스라엘군 탱크 행렬이 이스라엘 남부를 지나 가자지구 쪽으로 향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지상 공격의 서곡일 수 있다”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 내부의 작전을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징후”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지상전이 가져올 많은 인명피해를 우려해 하마스를 가자지구 내에 ‘봉쇄’하는 전략을 써왔다.
이스라엘군은 9일 남부의 가자지구 주변 7∼8곳에서 하마스를 자국 영토에서 몰아내기 위해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스라엘군 폭격기가 가자지구 내 슈자이야 지역을 최소 150회 공습하고 다른 무장세력 이슬라믹 지하드와 관련된 가자지구 내 표적 500여곳 이상에 대해 전투기·헬기와 포병 등을 동원해 공습과 포격을 가했다.
슈자이야 지역은 ‘테러의 둥지’라고 불리는 하마스 무장세력의 근거지다. 이번 공격을 통해 하마스 지휘부 7곳, 이슬라믹 지하드 지휘부 1곳을 타격했으며, 공습을 계속해 "이들 테러조직의 역량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이스라엘군은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분리장벽 주변 통제권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 방위군 대변인(소장)은 “이스라엘 방위군이 가자지구 주변의 모든 지역사회를 다시 장악했다”며 “현재 이스라엘 내에서는 이스라엘 방위군과 하마스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지역에 남아있는 테러리스트는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마스 측은 전날 밤 가자지구 인근의 한 집단농장에 무장대원 70명을 침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벤구리온 국제공항 등 이스라엘 중심부를 겨냥한 로켓포 공격을 단행했다. 하마스의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은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팔레스타인) 민간가옥에 대한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텔아비브 외곽의 벤구리온 국제공항을 겨냥한 로켓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는 지난 이틀 간 최소 226편의 항공편이 취소됐다. 하마스는 또 이날 남부 항구도시 아슈켈론에 100발 이상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전쟁 상황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하마스는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들을 무차별 살상을 저지르는 극단적인 잔혹성을 드러냈다. 낙하산과 오토바이, 모터보트 등 각종 탈것을 타고 침투한 하마스 대원들은 소총과 박격포 등으로 무장한 채 주택가와 공원, 광장 등을 가리지 않고 누비며 공격을 가했다.
CNN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동남부 네게브 사막에서 열린 노바 뮤직 페스티벌 현장에서 하마스는 민간인들을 일사불란하게 사실상 '사냥'했다. 관객 1000명 이상이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추수감사절)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오전 6시 30분쯤 음악이 갑자기 꺼지고 공습 사이렌이 울려 관객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전기가 차단됐다. 이어 밴 여러 대에서 하마스 대원 100여 명이 쏟아져 나와 인파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향해서도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가정집이나 공공건물에 들어가 아이들과 부모들을 인질로 붙잡았다. 소셜미디어(SNS)에는 당시 무장대원들이 시민들을 납치하거나 음악축제 관중들이 총격을 피해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퍼지고 있다. 당시 현장 모습이 담긴 영상에는 바닥에 방치된 시신들을 비롯해 무장대원에게 끌려가는 시민들, 총격으로 부서진 차량 등의 모습이 담겼고 겁먹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명 피해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보건당국은 8일 밤 하마스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700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도 이날 밤까지 집계된 사망자가 560명이라고 전했다. 양측 발표를 종합하면 사망자는 모두 1200명이 넘는다. 부상자 역시 이스라엘에서 2382명, 가자지구에서 2900명이 보고됐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인 상당수가 인질로 잡혔다. 하마스는 100명 이상의 이스라엘인 인질을 가자지구에 붙잡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슬라믹 지하드도 30명 이상의 이스라엘인을 억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질 중에는 군인 이외에 여성, 어린이, 노인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란민도 급증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피란민은 현재까지 가자지구에서 12만 명이 넘는다. 유엔 난민구호기구는 “225명 이상의 피란민을 수용한 학교가 여러 차례 직접 공격을 당했다”며 “대피소를 포함한 학교와 민간시설은 절대로 공격받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