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주 광풍 속 잇달아 터진 주가조작 사태
공매도 금지 카드로 증시 회복·V자 반등 유도
올해 국내 자본시장을 뒤흔든 이슈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자 증시는 큰 변동 폭을 보이며 요동쳤다. 높은 불확실성으로 예측할 수 없는 시장 흐름에 투자 열기가 천국과 지옥을 오간 가운데 투자 심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이슈로는 ‘공매도·테마주·주가조작’이 꼽힌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한해 국내 증시는 세 차례 발생한 대형 주가조작 사태로 매도 물량 급증 등 일시적인 충격이 발생했지만 2차전지를 비롯한 각종 테마주 열풍과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 힘입어 활기를 회복하기도 했다.
이처럼 투자자들의 선택을 좌우하는 이슈들이 빈번하게 등장했는데 이 이슈들이 내년까지 이어지며 증시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개미들의 열망 ‘공매도 금지’ 현실화
올해 증시에서 가장 큰 화두는 공매도 금지였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다시 주식을 사서 주식을 빌린 곳에 갚는 투자 방식으로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판 뒤 실제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다시 사들여 주식을 상환해 차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영풍제지 사태가 터진 지난 10월 18일 이후 코스피는 10월 말까지 7.41%(2460.17→2277.99) 떨어지는 등 약세를 보이자 공매도를 줄곧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지적해 온 개인 투자자들의 금지 요구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에 정부는 증시 회복을 위해 공매도를 내년 상반기까지 전면 금지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지목된 공매도가 원천 봉쇄되면서 공매도 잔고가 많이 쌓였던 종목들의 반등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자 증시 활성화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실제로 공매도 금지 조치는 하반기 증시가 ‘V자 반등’에 성공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매도 금지 조치가 시행된 첫날인 11월 6일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각각 134.03포인트(5.66%), 57.4포인트(7.34%) 오르는 등 높은 상승폭을 보였다. 이는 코스피가 지난 2020년 3월 24일 8.6%(127.51포인트) 상승하고 코스닥이 지난 2008년 10월 14일 7.65% 오른 이후 최대 상승률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코스피는 2500선을 회복한 뒤 이달 20일부터 2500~2600선을 오간 끝에 2655.28로 한 해의 막을 내렸다.
다만 공매도 위반에 대한 처벌이 미미해 주가 하락의 주범이 된다는 불만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금융위원회는 ‘무차입 공매도 방지 전산 시스템 구축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하고 공매도 전산화 방안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으나 이 과정에서 전산화 시스템 구축이 어렵다는 입장이 나와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이를 방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차입 공매도를 막기 위한 시스템이 부재할 경우 외국인·기관의 이익만이 보장돼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과 반발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테마주 열풍에 엇갈린 희비
올해 증시는 테마주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반기 2차전지·초전도체·맥신 등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정치와 관련된 테마주들이 대거 등장했다. 테마주 투자 열기가 뜨거워지자 단기 차익 실현을 위해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된 종목에 몰린 개인 투자자들도 속출했다.
지난 1월 2일 이후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된 건수는 226건으로 지난해(148건) 대비 52.7%가량 확대됐다. 지난 3~5월에는 2차전지 관련 기업, 8월에는 초전도체 테마주, 이달 들어서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과 연관된 정치 테마주가 대거 포함됐다.
테마주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등 기승을 부리자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테마주의 특성상 특정 이슈와 연관성이 없음에도 테마주로 분류돼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투자자들의 손실뿐 아니라 기업가치가 하락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은 테마주의 급등락 현상이 잦고 해당 종목들의 시가총액 규모가 작은 경우가 대다수인 점을 고려해 고도화된 시장감시체계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시장경보제도와 예방조치를 활용할 필요가 있고 테마주가 급등할 때 시장경보를 발동하거나 내부자 매도에 대한 수령제한을 검토하는 등 구체적인 예방조치가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잊을만 하면 터진 ‘주가조작’
국내 증시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연달아 발생한 가운데 유독 주가조작이 기승을 부렸다. 지난 4월 ‘라덕연 사태’를 시작으로 6월 ‘5개 종목 무더기 하한가 사태’, 10월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 등 끊임 없이 주가조작 악몽이 재현됐다.
이같은 주가조작 사태는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악재로 작용했다. 사태 당시 연루됐던 15종목들에는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국내 증시가 폭락했다. 이들 종목은 여전히 하락세를 보이며 주가가 바닥을 맴돌고 있는 상황이다.
굵직했던 세 차례 주가조작 사태를 포함해 올해 발생한 주가조작 등 시세조종 사건은 8건에 달한다. 이 피해가 결국 투자자에게 돌아오게 되자 불공정거래 행위 엄단 목소리가 커졌다. 불공정거래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 중 하나가 제재 부족이라는 진단에서다.
이에 금융당국은 불공정거래를 엄단해 자본시장 질서를 잡겠다며 다급히 제도 개선에 나섰다. 내년 1월부터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 부과가 이뤄진다
기존 미공개정보 이용행위·시세조종·부정거래 등 3대 불공정거래에 대해 벌금·징역과 같은 형사처벌만 가능했으나 부당이득이 없거나 산정이 곤란한 경우에도 40억원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방침이다.
이밖에도 제보 없이 적발하기 어려운 주가조작의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리니언시 제도(자진신고자 감면)’를 도입했으며 불공정거래를 행한 사람에게 10년간 금융투자상품 거래를 제한하는 등 새로운 제재 수단을 도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