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일제 강제징용 재상고 및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 재판 개입 혐의
재판부 "하급자들 직권남용, 인정 안 돼…양승태 공범관계도 증명 어려워"
공소사실 방대해 선고 요지 설명만 4시간 소요…이례적 휴정 진풍경도
검찰 "1심 판결 면밀히 분석해 항소여부 결정 예정"…양승태 "당연한 귀결"
사법 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돼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1심에서 47개 혐의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기소된 지 4년 11개월 만이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67)·고영한(69) 전 대법관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임종헌 전 차장 등 하급자들의 직권남용죄 등 혐의가 대부분 인정되지 않고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가담 등 공범 관계가 검찰의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도 인정되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부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인사 불이익을 주고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특정 법관 모임의 와해를 시도한 혐의를 받았다.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파견 법관을 활용해 내부 정보를 보고하게 한 혐의 역시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기소한 범죄사실만 40여개에 달해 이날 재판은 판결 이유와 선고 요지 설명에만 4시간가량이 소요됐다. 선고 중간에 이례적으로 10분간 휴정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오후 6시30분경 선고를 마치고 취재진에게 "당연한 귀결"이라며 "이렇게 명쾌하게 판단해 주신 재판부께 경의를 표한다"고 짧게 소회를 밝혔다.
기소와 공소 유지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은 선고 직후 "1심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히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을 도입하는 데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도움을 받고자 일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도 받는다. 또 헌법재판소 내부기밀을 빼내 헌법재판소와의 위상 경쟁에 활용한 혐의도 받는다.
아울러 양 전 대법원장은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사 기밀을 수집하고 영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와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을 압박한 혐의도 받는다. 이 밖에도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5000만원을 조성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