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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기성세대'의 계산기로 본 세계 저출산 원인 [기자수첩-국제]


입력 2024.03.14 07:07 수정 2024.03.14 13:19        정인균 기자 (Ingyun@dailian.co.kr)

전 세계에서 빠르게 퍼지는 '저출산 유행'

예비 기성세대, 위험회피를 출산에 적용

정부 저출산 대응 예산 방향이 잘못됐다

경기도 안양시내의 한 산후 조리원 신생아실. ⓒ뉴시스

지난주 여성 인권 지표 관련 기사를 쓰다 우연히 세계 출산율 지표를 살펴보게 됐다. 지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저출산 현상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있던 것이다.


이 추세는 수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특히 출산 복지가 확충됐다고 알려진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출산율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 여성의 1인당 출산율은 1.57(2016년)에서 1.26(2023년)로, 노르웨이는 1.71에서 1.41로, 스웨덴은 1.85에서 1.52로 급락했다.


출산율 하락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했다고 알려진 프랑스나 독일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2020년 1.79였던 프랑스의 출산율은 2021년 1.80로 깜짝 반등하긴 했지만, 2024년 1.64로 다시 주저앉았고, 독일 또한 출산율을 2021년 1.53에서 2022년 1.58까지 끌어올렸다가 2023년에 다시 1.46로 떨어뜨렸다.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지표는 더욱 처참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처음 1.0 이하인 0.98을 기록하며 수년째 전 세계 최저 수준을 보이는 중이고, 그 뒤를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 등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속도다. OECD 통계 기준, 지난 2년간 주요국들의 평균 출산율은 10%가량 하락했다. 핀란드의 경우는 10년간 25%나 감소했다. 이는 역대 가장 빠른 속도다.


우리는 지금까지 ‘애 키울 돈’이나 ‘애 낳을 시간’이 없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북유럽 국가들의 출산율 지표는 그것들이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위의 이유가 맞으려면, 적어도 풍요롭고 출산 복지가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았어야 한다.


이에 관해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달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FT는 출산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변화했다고 봤다. 어릴 때부터 온갖 정보를 접하며 손해 보는 것을 피해온 ‘예비 기성세대’가 ‘위험회피(불확실성은 낮추려는 경제 현상)’ 성향을 출산에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대는 기회비용 계산이 빨라 효용이 낮은 일을 재빠르게 포기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들은 출산을 경험하기도 전에 이를 ‘비용’이라고 인식하고, 경험하기도 전에 미리 포기해 버린다. 이들 입장에서는 임신은 물론이고 결혼과 연애조차도 계산기에 들어가는 수치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들의 계산기는 매우 정확한 편이다. 과거 기성세대들이 기회비용과 효용을 계산할 때 고작 친척, 주변 이웃과 정보를 나눴다면 이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전국, 전세계 단위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여기서 차곡차곡 쌓인 데이터들이 과거보다 정확한 계산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 현상이 비교적 빨리 온 우리나라는 매년 50조원가량을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이 돈은 대부분 교육비 지원, 육아 휴가 지원, 주거 비용 등에 쓰였다. 과연 이런 정책으로 예비 기성세대들의 계산기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정부의 계산기’는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된 게 아닐까?

정인균 기자 (Ingyu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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