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 순매수 규모↑…4월 7천억원
금융·지주 담으며 호응…투자 행보 관심
정부의 밸류업 지원방안이 본격 시행을 앞둔 가운데 연기금이 ‘저평가’ 종목들을 바구니에 집중적으로 담으면서 지원사격에 나섰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려면 연기금의 참여가 필수적인 만큼 향후 이들의 행보와 수급 영향력에 관심이 모인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최근 한 달간(4.2~5.2) 국내 증시에서 7100억원 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연기금에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금과 기금, 공제회, 국가·지자체 등이 포함된다.
월별로 보면 연기금은 지난 1월 국내 증시에서 6778억원을 팔아치웠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지난 1월 24일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예고한 이후 차츰 ‘사자’로 돌아서면서 2월 1102억원, 3월 2508억원, 4월 7187억원으로 순매수 규모가 확대됐다.
연기금은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예고 이전까지는 주로 2차전지나 기술주 등 성장성이 부각되는 종목을 사들였다. 연초 이후 2개월(1월2일~2월29일)간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LG화학(4226억원)·에코프로머티(2725억원)·포스코퓨처엠(1668억원) 등의 순으로 이름을 올렸다.
반면 지난 3월부터 전날(3.4~5.2)까지 연기금의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종목들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들이 포진해 있다.
삼성전자(5326억원)에 대한 순매수 규모가 가장 컸고 포스코홀딩스(1583억원)와 셀트리온(1524억원)이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신한지주(1074억원)·삼성생명(885억원)·두산(640억원)·현대차(402억원) 등도 순매수 상위권에 들었다.
이 기간 연기금은 실적 회복이 기대되는 수출주와 밸류업 관련주인 금융·지주사 종목 위주로 사들인 셈이다. 이는 연기금이 정부의 증시 활성화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지주사는 대표적인 저평가 업종으로 주주 환원 기대감이 큰 밸류업 수혜주로 꼽히고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투자 행보에 대한 주목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전날인 2일 밸류업 2차 세미나를 열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면서 밸류업 프로그램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밸류업 프로그램을 벤치마크한 일본의 경우 증시 부양에 일본 공적기금(GPIF)의 역할이 컸다”며 “국내 밸류업 역시 연기금의 투자 확대가 필수적인 상황으로 국내 연기금을 대표하는 국민연금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은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지침서인 ‘스튜어드십 코드’ 제도 개편을 통해 연기금의 밸류업 동참 근거를 마련하고 밸류업 우수 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제고에 나서는 곳에 투자금을 더욱 늘릴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금액은 1월말 기준 148조원으로 전체 기금(1049억원)의 13.2%에 해당한다. 올해 국내주식 목표 비중인 15.4%(161조5000억원) 대비 2.2%포인트가 낮은 상황이다.
이미 국민연금이 밸류업 방향성에 찬성하며 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밸류업 종목들에 대한 매수세가 강화될 수 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1분기에 밸류업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수급은 외국인이었지만 추후 주요하게 봐야 할 것은 연기금 수급”이라며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금액이 올해 목표 비중에 미달하고 있어 연기금의 매수세가 관찰되는 시기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