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명심·내편·개딸' 삼박자가 초래한 '입법부 위기론'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4.05.23 07:00 수정 2024.05.23 07:00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22대 국회, 민주당 강조하는 '김대중 정신' 부활 불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진영의 주장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정치인을 향해 '수박'이라고 부르며 역적이나 배반자로 여긴다. 대의민주주의의 큰 위기다."


오는 29일 임기를 마치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이 50년 공직 생활 마무리에 앞서 의회정치 초입길에 오른 후배들에 남긴 말이다. 22대 국회의원 초선 당선인 135명 앞에 선 김 의장의 우려는 현 이재명 대표 체제의 대명사인 △명심(明心·이 대표의 의중) △편 가르기 △개딸(이 대표 극성 지지자)이 장악한 거대 야당이 입법부를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에 대한 경종이다.


이 대표 체제 들어 민주당 행보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이 일례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립각을 세우던 문재인 정권 법무부 장관 출신 추미애 민주당 당선인(6선·경기 하남갑)이 국회의장 경선에서 같은 당 우원식 의원(5선·서울 노원을)에게 패배했다.


야권에선 '명심'을 앞세워 여유로운 승리가 점쳐지던 추 당선인의 패배에 당황한 분위기가 감지됐고, 결국 개딸이 분노해 탈당 사태에 이른다. 우 의원은 자신들이 바라는 국회의장이 아니라는 항의 차원이다. 국회의장과 원내대표는 당 소속 의원이 선출하도록 규정한 국회법 위에 서겠단 생떼로도 볼 수 있다.


개딸들은 친명(친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우 의원을 '왕수박'으로 비하 하기에 이른다. 나아가 지난해 9월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와 마찬가지로 추 당선인에 투표하지 않은 의원 및 당선인들을 수박으로 못 박고 투표 인증 문자 메시지를 돌리는 등 '수박 색출' 작업에 나선 것으로도 알려졌다. '수박'은 민주당 강성 당원들이 비명(비이재명) 인사들을 겨냥해 사용하는 멸칭이다.


이들이 이토록 민주당에 강경 목소리를 내는 배경엔 '당선 청구서'가 있다. 당원이 당선 시켜 줬으니 당선인들은 당원의 뜻을 따르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개딸들은 이를 통해 '정치 효능감'을 증명하라고 한다.


개딸들의 요구는 헌법과 국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원의 소신·양심 투표권을 제한 한다는 논란의 소지가 크다. 하지만 민주당은 급기야 국회의장 후보 선출 과정에 권리당원 의사를 10% 반영하는 '10% 룰'에 이어 최소 '20% 룰'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다음 국회에서 당원들에게 목줄을 잡힌 의원들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양새는 불 보듯 뻔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의장 경선이 끝난 뒤에도 지금 같은 당원 반발 사태와 지도부발(發) 당원 권한 강화 제안이 이어지는 상황은 생소하다"며 "결국 명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명심이며, 명심과 당심에 반하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해 내 편 아니면 배척하는 심리가 어느새 우리 당의 디폴트(기본) 값이 된 것"이라고 했다.


22대 국회가 개원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문제는 지난 국회보다 선진 국회를 이뤄 낼 기대감은커녕 국민적 피로도와 혐오감만 양산해 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친명계와 강성 당원으로부터 띄워진 연임론에 올라탄 이 대표가 기대에 부응할 경우, 다가올 새 국회에서 거대 야당의 폭주와 협치의 상실은 자명하다.


"민족주의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외적으로는 독립과 공존을 양립시킬 수 있고, 대내적으로는 통합과 다양성을 병행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 없는 민족주의는 쇼비니즘(배타적·맹목적 민주주의)과 국민 억압의 도구가 되기 쉽다." (故 김대중 대통령 옥중서신 中)


인천 계양을에서 4·10 총선 선거 운동 중 "설마 2찍은 아니겠지?"라며 밥을 먹던 시민에게 편 가르기 발언을 하고선 주변인과 함께 웃음까지 터뜨려 물의를 빚은 제1야당 대표다. 개딸 역시 당대표에 이견을 내는 당내 인사들을 향해 '수박' '탈당해 국민의힘으로 가라'는 등의 배격도 서슴지 않는다. 사석에서 만난 민주당 재선 의원은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해야 할 때"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현 상황만 놓고 보면 다음 국회에서 당대표와 민주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김대중 정신'이 부활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22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과 정치권의 '입법부 위기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기자수첩-정치'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