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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깼다”…이봉련 공주가 말아주는 현대판 ‘햄릿’ [D:현장]


입력 2024.07.08 16:02 수정 2024.07.08 16:02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여성 햄릿을 내세운 국립극단의 연극 ‘햄릿’이 드디어 관객을 만난다. ‘햄릿’은 당초 2020년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라인업으로 편성돼 제작까지 마쳤으나, 코로나19 확산세로 관객을 만나지 못했던 작품이다.


부새롬 연출은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긴 시간을 지나서 첫 공연을 올리고 관객을 만나게 됐다”면서 “무대에서 물을 쓰기도 해서 혹시나 사고가 나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첫 공연이 사고 없이 올라가서 다행이고, 끝날 때까지 배우들이 건강하게 사고 없이 무사히 공연을 마무리하길 바란다”고 개막 소감을 전했다.


ⓒ뉴시스

앞서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에서 공개됐던 ‘햄릿’은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극의 전개와 압도적인 미장센, 광기로 치부할 만큼 파격적인 연기로 평단의 호평에 승선하며 끊임없이 관객의 재공연 요청을 받아왔다. 화면을 넘어 드디어 관객 앞에 서는 ‘햄릿’은 17세기 원작이 쓰인 당시 사회 관습과 통념을 완전히 벗어내고 현대적인 얼굴로 분했다.


1601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집필된 ‘햄릿’은 작가의 비극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의 보편성으로 현재까지 수많은 예술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극으로서의 ‘햄릿’ 또한 수많은 변주로 재탄생했다.


연출가 부새롬과 각색가 정진새는 원작이 가진 이러한 위상과 가치에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발단으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 ‘햄릿’을 탄생시켰다. 420여년 전의 이야기는 정교한 심리묘사와 과감한 시대성의 반영, 창의적인 극작과 연출로 현 한국 연극계를 견인하는 두 예술가의 손과 머릿속에서 집요하게 해체되어 오늘날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이번 ‘햄릿’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성별의 변화다. 원작이 탄생한 당시 ‘당연히’ 남성이었던 왕위계승자 햄릿은 여성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햄릿의 상대역인 오필리어는 남성으로 바뀌었고 길덴스턴, 호레이쇼, 마셀러스 등 햄릿 측근 인물들에도 적절히 여성이 배치됐다.


부새롬 연출은 “원작을 처음 제안받고 제가 느끼는 원작 속의 불편한 지점을 어떻게 불편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예컨대 아주 오래전에 쓰여진 작품이기 때문에 여성을 향한 혐오나 폄하적인 부분을 덜어내고 싶었다. 그러면서 햄릿의 성별을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다”면서 “디렉션을 하려면 저만의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데 왕자 햄릿을 연기하는 여성 배우가 잘 그려지진 않아서 ‘젠더 밴딩’을 선택했다. 공주로 성별을 바꿔도 충분히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저에겐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정진새 작가는 “중요한 지점은 공주 햄릿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는가였던 것 같다. 작품을 만들면서 다양한 인물이 햄릿과 관계를 맺는다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유독 특이하게 주인공 햄릿에 집중하는 강도가 셌다. 햄릿의 이야기를 각색하는데 중점을 뒀고 나머지 인물은 원작 안의 사건을 잘 드러내는 정도로 바꿀 수 있는 건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건 그대로 두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햄릿은 배우 이봉련이 연기한다. 135분에 달하는 공연 시간 동안 은밀하고도 광기 어린 연기로 감정을 쏟아붓는 그의 연기는 익숙하면서도 완벽히 새로운 햄릿의 탄생을 알리면서 2021년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했다.


이봉련은 “희곡을 읽고 학습하고 훈련하면서 떠올렸던 햄릿과 제가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조건은 다르니까 저에게 햄릿이란 역할이 올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면서 “그런 면에서 저에게 ‘햄릿’은 햄릿은 어때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저의 편견을 발견하고, 그 편견을 깨는 과정이었다. 제 인생에 햄릿을 만나게 된 건 천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새롬 연출은 이봉련을 햄릿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 “연기를 너무 잘해서 캐스팅했다. 정말 그것 하나였다”면서 “특히 이봉련 배우의 체구가 작아서 좋았다. 맞으면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인데 버티고 싸우려고 하는 그런 느낌이 나는 배우였다. 지금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잘해주고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작품은 선과 악의 구분지도 제거했다. 햄릿의 대척점에 서 있는 클로디어스를 포함해 작중 인물들이 행하는 선택과 결단을 완전히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 없도록 각 인물의 행동마다 적절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좇아가는데 나름의 명분과 사리를 부여한 극화는 선인과 악인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림으로써, 극장을 떠나는 관객의 발걸음에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눌어붙도록 한다.


이봉련과 함께 배우 김수현이 형이 죽은 후 왕국의 왕이 된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로, 배우 김용준이 햄릿을 추방하고 오필리어를 미쳐 죽게 만들며 레어티즈의 복수심을 유발해 작품의 플롯을 비극적 결말로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의 폴로니어스로, 배우 성여진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심적으로 매우 괴로워하던 햄릿을 고립시킨 가장 큰 원인이자 자신의 죽음으로 햄릿에게 클로디어스를 죽일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는 왕비 거트루드로 무대에 오른다.


이외에도 류원준(오필리어 역), 안창현(레어티즈 역), 신정원(오즈릭 역), 김유민(호레이쇼 역), 김별(마셀러스 역), 김정화(버나도 역), 이승헌(로젠크란츠 역), 허이레(길덴스텐 역), 노기용(레날도 역) 등의 배우가 함께 연기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같은 ‘햄릿’이 동시에 무대에 오르게 된다. 지난달 9일 제작사 신시컴퍼니의 ‘햄릿’이 이미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오는 10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신유청 연출, 황정은 극작가가 합류한 ‘햄릿’도 개막한다.


부새롬 연출은 “저 역시 왜 지금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무대에 오르는지 질문이 생긴다. 사실 영향을 받을까봐 신시컴퍼니의 ‘햄릿’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신시의 ‘햄릿’과 가을에 올라갈 ‘햄릿’도 보고 싶다. 관객들도 비교해가면서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국립극단의 ‘햄릿’이 주는 메시지는 비밀에 부치고 싶다.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면서 “그럼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고전 작품의 경우 관객이 단순히 ‘구경’하는 경우가 많은데 햄릿을 응원해주고, 안타까워해주는 등 마음을 담아서 작품을 봐주셨으면 한다”고 바랐다.


마지막으로 이봉련은 “배우가 이유가 있어서 햄릿을 택한 것처럼, 관객들도 관극할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연출가, 작가님이 ‘이 작품은 여성이 하든, 남성이 하든 관계없다’고 말했던 것이 저에겐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가 됐다. 여성 햄릿을 어필하기보다는, 그 누구여도 상관없는 햄릿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지금이니 그것을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날 때까지 객석이 들끓길 바란다. ‘이쪽 햄릿’ ‘저쪽 햄릿’을 보면서 원작인 고전을 다시 읽어주신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햄릿’은 오는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서울 공연 종료 후에는 세종예술의전당(8월 9일~10일), 대구 수성아트피아(8월 16일~17일)에서 지역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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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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