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더할까? 속도 줄일까?… 전기차 시장 양극화
美 정부, GM, 스텔란티스 등 전기차 전환 지원
벤츠, 전기차 판매 감소에 기존 배터리 계획 둔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으로 투자를 늘려 미래를 대비하거나, 아니면 전기차 수요 둔화로 아예 계획을 철회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식이다. 약 2년 전 향후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해 너도나도 대규모 투자와 공격적인 전동화 전환 계획을 내놨던 만큼, 예견된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15일 업계 및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업체인 GM(제너럴 모터스)과 스텔란티스를 포함해 미국의 전기차 생산을 늘리기 위해 총 17억 달러(약 2조3300억원)를 지원한다.
지원금은 구체적으로 미시간과 펜실베니아, 조지아, 오하이오, 일리노이, 인디애나, 메릴랜드, 버지니아 등 8개 주에 소재한 공장 11개를 연간 10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 시설로 전환하는 데 쓰인다.
대표적으로는 GM의 미시간주 랜싱 그랜드 리버 어셈블리 공장에 5억 달러, 스텔란티스의 일리노이주 벨비디어 어셈블리 공장에 3억3480만 달러, 스텔란티스 인디애나주 변속기 공장에서 전기 구동 모듈을 만드는데 2억5000만 달러 등이 지원된다. 바이든 정부는 이 프로젝트로 29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만5000명의 근로자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 경제 건설은 노조와 자동차 기업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라며 "내 전임자 시절 버려진 근로자들이 내 정책 지원을 통해 돌아오고 있다"고 밝혔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이 보조금은 바이든 행정부 산업 정책의 품질보증 마크"라며 "오랜 역사를 지닌 자동차 생산 시설의 현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을 앞두고 노동자 강세지역에 보조금을 투입해 유권자의 표심을 잡으려는 조치이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 임기 내내 주력했던 친환경 정책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 GM, 스텔란티스 등 미국 자동차 업체들 역시 전동화 정책에 힘을 싣게 됐다.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GM은 UAW와의 계약에 따라 향후 전기차 생산을 위해 랜싱 공장에 12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스텔란티스도 1억 달러 규모의 부품 허브 모파와 32억 달러 규모의 합작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전세계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업계의 기대보다 빠르지않지만, 향후 시장 선점에 앞서 미리 준비해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 입어 기존 전기차 정책에 회의적이던 GM과 스텔란티스도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반면, 자동차 강국 독일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 감지된다. 전기차 수요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계획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30년까지 전 라인업 전동화를 내세우면서 전기차 출시에 가장 속도를 냈던 브랜드 중 하나다. 당시 벤츠는 기존계획을 이행하려면 2030년 말까지 200GWh(기가와트시) 이상의 배터리 셀 용량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전 세계에 8개의 셀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마르쿠스 셰퍼 벤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계획했던 용량의 배터리셀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대보다 전기차 수요가 낮은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독일과 이탈리아에 두 개의 ACC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려는 계획도 중단했다.
폭스바겐그룹도 전기차 수요부진에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아우디 공장의 구조조정이나 폐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뤼셀 공장에서는 아우디 Q8 e-트론 전기차가 2019년부터 생산 중인데, 최근 판매가 부진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폭스바겐 그룹은 지난 2분기에 전 세계적으로 224만3700대의 차량을 인도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8% 감소한 규모다. 아우디는 지난 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1.3% 줄었다.
업계에서는 2년 전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전동화 전환에 뛰어들었던 만큼,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년 사이 시장 상황이 변화하면서 브랜드의 전동화 전략이 구체화됐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동화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기까지 업체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얼마나 더 길어질 지 모르기에 어느쪽이 잘못했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2년 전엔 전기차를 해야한다고 하니까 다들 뛰어들었는데, 이제부터가 진짜 전략이 구체화된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