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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정의를 위해 침묵을 거부한 목소리 [D:헬로스테이지]


입력 2024.08.19 07:32 수정 2024.09.10 22:29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나는 고발한다. 가리워진 진실을"


'에밀'은 일명 '드레퓌스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창작 초연 뮤지컬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 대위 A. 드레퓌스가 독일 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돼 종신형을 받아 프랑스 민주주의에 뜨거운 화두를 던진 일이다.


파리의 독일 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체가 드레퓌스와 비슷하다는 것과 유대인이라는 점이 드레퓌스 스파이 낙인의 결정적 증거가 됐다. 이후 군부에서는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니라는 확증을 얻었음에도, 조작된 사건을 은폐 시도, 고발된 에스테라지 소령을 형식적인 심문과 재판을 거쳐 석방했다. 이 사건을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가 군부의 의혹을 고발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보내는 형식을 빌려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으로 로로르지를 통해 기고했다.


이 사건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스파이 혐의를 뒤집어쓴 드레퓌스를 놓고 지식인계가 둘로 나뉘어져 격돌해 프랑스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뮤지컬 '에밀'은 드레퓌스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힘쓰던 에밀이 의문의 가스 중독으로 사망하기 전날 밤으로 시계를 돌렸다.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한 이후 보수 세력으로부터 배신자 취급과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에밀에게 그를 동경하는 청년 클로드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테레즈 라캥'(Thérèse Raquin), '목로주점'(L'Assommoir), '제르미날'(Germinal) 등으로 프랑스 문화예술계 최고 명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에밀의 글에 감명 받은 클로드는 그를 향한 찬사를 늘어놓지만 목적은 미완성된 그의 원고를 훔치러 왔다. 미완성된 원고를 손에 넣는 일보다 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입으로는 찬사를 늘어놓지만 속내는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에밀에게 분노가 깔려 있는 클로드다.


값비싼 코냑을 마시며 세상의 비극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에밀과 목적을 숨긴 채 값싼 압생트를 마시며 내일을 꿈꾸는 클로드의 술잔은 시간이 지날 수록 위태롭게 찰랑인다.


사실 클로드는 에밀이 왜 이렇게까지 드레퓌스의 구명을 위해 힘 쓰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형의 죽음을, 자신의 가난을 향한 원망을 쏟아내는 상대로 자신의 국가인 프랑스보다 유대인 드레퓌스를 지목하는 일이 더 쉬운 일이다.


에밀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던 클로드는 결국 묻고 싶던 질문까지 울분을 토해 던진다. 에밀은 클로드의 총구가 머리를 겨눠도, 자신의 명예가 사라져도, 치욕스러운 역사가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 말하는 걸 멈출 수 없다.


'에밀'은 에밀과 클로드의 '2인극', '한정된 공간'이라는 특수성을 살려, 심리극이 가지는 긴장감을 조성했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을 벌이기 전, 속고 속이는 탐색전, 운명적으로 걸어들어가는 진실의 소용돌이는 속도감 있게 러닝타임을 채운다. 에밀과 클로드를 상징하는 소품들과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조명 등을 적극 활용해 밀폐된 공간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살렸다.


2인극의 특성상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와 감정의 흐름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에밀 역의 박영수는 굳은 신념을 지닌 지식인의 복잡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고, 클로드를 연기한 김인성은 혼란과 갈등 속에서 점차 변화하는 인물의 감정선을 힘 있는 선율과 함께 촘촘하게 그려냈다. 두 배우의 대화는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해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음악도 그들의 대립과 내면의 갈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에밀'의 신념이 더욱 힘 있게 전달되는 넘버들로 구성됐다.


결국 에밀의 입에서 외치던 '진실을 향한 행진'은 클로드 입으로 옮겨지는 필연적인 결말로 흐른다. 상반된 신념으로 부딪치던 두 사람은 같은 진실을 향해 걸으며 100분의 러닝 타임 안에 깊이 있는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에밀'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으로 구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에밀과 클로드의 대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진실과 정의의 의미를 깊이 돌아보게 만든다. 에밀의 신념인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비극과 치욕'은 동시대성을 지녔기에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힘이 실렸다.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진실을 보려 노력하고 말해야 한다는 걸 상기시킨다. 9월 1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 스테이즈 3관.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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