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유족 9명 중 6명 승소·3명 기각
승소원고 6명에게 피해배상금 지급 주문
일본 사도광산 등을 운영한 옛 미쓰비시 광업의 여러 탄광 사업장에서 강제노동한 피해자들의 유족이 4년 7개월에 걸친 손해배상소송에서 일부 승소를 거뒀다.
광주지법 민사11부(유상호 부장판사)는 27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9명이 미쓰비시 머티리얼(옛 미쓰비시 광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6명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하고, 원고 3명의 청구는 기각(패소) 결정했다.
재판부는 승소원고 6명 중 4명에게는 1억원씩을, 나머지 원고 2명에게는 상속분에 해당하는 1666만여원과 7647만여원을 각각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원고 3명에 대해서는 사망 피해자가 미쓰비시 광업 탄광에서 일했다는 증거가 부족하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의 강제동원 피해자 9명은 모두 사망해 자녀들이 소송원고로 참여했다.
승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인 고(故) 이상업 씨는 1943년 고향인 전남 영암군에서 만 15세에 '영장'을 받고 일본으로 끌려갔다.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하는 일본 후쿠오카현 가미야마다(上山田) 탄광에 끌려간 이씨는 지하 1000m 굴속에서 석탄을 캐고 탄차를 미는 중노동을 약 2년간 하는 사이 심폐증 환자가 됐다. 1945년 해방 후 귀향한 이씨는 88세에 강제 동원의 기억을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라는 제목의 회고록으로 남기고, 2017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다른 승소 피해자 고(故) 윤모씨는 25세에 전남 곡성군에서 면장의 꼬드김에 강제 동원돼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리며 미쓰비시광업의 탄광에서 일하다 해방된 줄도 모르고 1945년 12월까지 강제노역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일본정부의 강력한 지원 속에 미쓰비시는 침략전쟁 기간 군수산업으로 급성장하며 조선인 약 10만명을 강제 동원한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내 27개 작업장을 운영했고 한반도 전역에 37곳의 탄광과 군수공장을 운영했다. 이중 나가사키 군함도(하시마 탄광)는 2015년 유네스코 산업 유산에 등재됐고, 니가타현 사도광산도 올해 7월 유네스코 산업유산에 등재됐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군함도와 사도광산 모두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한 사업장으로 일본 측이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며 "법원이 미쓰비시 광업에 대해 사법적 단죄를 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광주지법에는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19명이 제기한 1심 손해배상 소송도 변론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