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가 삼성전자 최대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과 손잡고 방사선 피폭 등 반도체 직업병 이슈를 또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2018년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조정위원회의 중재를 거쳐 가까스로 이뤄낸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삼성전자가 무조건 수용한다고 약속한 조정위 제안을 두고 "우리 사회의 귀중한 사회적 합의 모델"이라는 평가가 나왔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전삼노는 전날 방사능 피폭 사고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최근 일어난 방사선 피폭 사고를 중대재해로 인정해 삼성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에 근거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앞서 전삼노와 반올림은 지난달 5일 업무협약식을 갖고 기흥사업장 집단 산재 대응과 관련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양측은 기흥사업장 8인치 라인에서 퇴행성 관절염 등 산업재해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 노동건강권 사업 등을 공동 기획하고 추진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2018년 당시 합의를 파기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6년 전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반도체 사업장에서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과와 보상, 예방조치 등에 합의하면서 상호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향후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2018년 7월 당시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의 중재 아래'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 서명식'을 가졌다. 이들은 ‘조정위 중재안을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했고 걑은해 11월 3자는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을 열었다.
이 합의는 백혈병 등 특정 질환뿐만 아니라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병 가능한 모든 직업병에 대한 예방 지원책이 포함돼 있다. 피해 가능성이 있는 자를 포함하기 위해 보상범위를 늘린 것이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반도체 직업병 문제와 관련한 대립과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상호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반올림과의 합의에 따라 보상 업무를 위탁할 제 3기관으로 법무법인 지평을 정했다.
보상과는 별도로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기탁했다. 2007년 3월 이후 11년 넘게 끌어온 분쟁은 이로써 종결됐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그동안 반도체 직업병과 관련해 인과성을 따지지 않고 폭넓게 보상해 왔다. 또 외부 전문가로 옴부즈만 위원회를 구성해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에 대한 점검을 받고 관련 제안을 받아들여 시행했다.
최근에는 반도체, 가전, 휴대폰 등 전 사업장에 걸쳐 근골격계 질환 '뿌리 뽑기'에 나서겠다고 했다. 전국 사업장에 근골격계 예방센터 16곳을 운영중인 삼성전자는 근골격계 질환 근절을 위해 DX/DS부문 최고안전책임자(CSO) 등이 포함된 개선 TF를 구성, 가동중이다.
이같은 사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올림이 또다시 반도체 직업병 이슈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산업계는 예의주시고 있다. 더군다나 반올림은 올 여름 파업을 일삼으며 사측과 대립각을 세운 삼성전자 내 최대 노조 전삼노와 손까지 잡았다.
11년간 진통 끝에 쌓아 올린 사회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 뿐 아니라, '직업병·산재기업' 키워드를 내세워 더 조직적으로 사측을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