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했던 3분기와 달리 4분기부터 수주 소식 이어져
친환경 선박 수요가 많아져...LNG 선박 수요 ↑
K-조선, 잇딴 수주에도 중국 견제론 커져
국내 조선 3사가 하루에만 2조원 가량의 수주를 기록하면서 'K-조선 르네상스'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일찍이 고부가 선박 위주의 선별 수주 전략을 택한 상황에서 최근 증가하는 친환경 선박 수요까지 흡수하면서 실적 상승에 힘이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중국 조선사의 기술적 도약이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조선 3사인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은 지난 2일 하루에만 총 2조1051억원에 달하는 선박 건조 계약 소식을 알렸다.
3사의 이번 수주는 글로벌 탈탄소 추세 속 친환경 선박 발주 수요가 지속된 데 따른 결과다. 탈탄소 전환의 중간 에너지원 역할을 담당하는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분야 선박이 수주 릴레이를 이끌었다.
삼성중공업은 6783억원 규모로 아시아 지역 선주와 LNG 운반선 2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오션은 아시아 지역 선주로부터 5454억원 규모의 LNG-FSRU(부유식 저장·재기화 설비) 1척을 수주했다.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오세아니아 소재 선사와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2척, 액화천연가스(LNG) 벙커링선 1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아시아 소재 선사와 극초대형메탄올운반선(ULEC) 2척에 대한 계약도 체결했다. 3사 합산 수주 규모는 무려 2조1051억원이다
선박에 대한 수요와 이익이 동시 상승하면서 3사의 실적도 대폭 개선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1년 1조4000억원 영업손실을 냈지만, 올해는 1조3500억원의 영업이익이 전망된다. 삼성중공업의 올해 이익 전망치도 4619억원으로 지난해의 두 배에 육박한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1965억원 적자에서 올해 2100억원대 흑자가 예상된다.
통상 배를 주문 받고 인도하는 데 2년여 시간이 걸리는데, 현재 3사가 쌓아둔 수주잔량은 3년~3년6개월치에 달한다. 업계 안팎에서 'K-조선 르네상스' 언급이 많아지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근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중국 조선사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사실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10여년 전부터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친환경 선박 등이 등장하고 선사들의 요구가 달라지는 지금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선박그룹유한회사(CSSC)는 카타르에너지가 발주한 초대형 큐맥스(Q-Max) LNG 운반선 18척을 60억 달러(약 8조1000억원)에 수주했다. 업계에 따르면 큐맥스 LNG 운반선의 경우 선박의 크기 때문에 2척씩 병렬 건조가 필요한 데 국내 조선사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중국이 수주하게 됐다.
과거 양국의 기술 격차로 국내 도크 상황이 어려워도 한국에 발주가 몰리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국면이 된 것이다. 중국이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을 거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해운·조선업 2024년 상반기 동향 및 하반기 전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 신조선 발주량은 작년 동기 대비 34.2% 증가한 3322만CGT(표준선 환산톤수), 신조선 발주액은 58.2% 증가한 1061억 달러(약 143조원)에 달한다.
상반기 신조선 시장의 수주량 기준 점유율은 중국이 66.1%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며 한국과 중국 간 격차가 사상 최대폭으로 확대됐다. 앞서 언급한 대로 중국이 카타르에너지가 발주한 초대형 큐맥스 LNG 운반선 18척과 1만2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 전량을 수주하며 대형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수주 점유율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2019년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수주 점유율은 각각 31%와 37%로 격차가 크지 않았으나 2021년에는 32.4%와 50.6%, 2023년에는 21.2%와 58.9%로 격차가 갈수록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업계 안팎에선 중국에 대한 견제론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김세원 세종대 AI로봇학과 교수는 "선사들이 친환경 선박을 발주할 때 이제는 한국보다 중국에 먼저 문의하고 있다"면서 "이는 한국 조선사의 도크가 꽉 차서도 있겠지만,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좁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중국 조선사들이 유의미한 수주 소식을 내고 있기 때문에 견제는 확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 산업이 친환경으로의 전환 때문에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고, 이는 그동안 가졌던 경쟁관계를 다시금 설정해야 할 수 있다"면서 "지금 3년치 일감을 쌓아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이러한 경쟁력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