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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공간"…광주극장, 모두의 극장이 될 때까지 [공간을 기억하다]


입력 2024.10.11 14:21 수정 2024.10.14 10:0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작은영화관 탐방기⑫]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사라지는 극장들 속, 광주극장이 남긴 희망의 흔적"


ⓒ광주극장 간판

광주극장은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단관, 즉 스크린을 한 개만 갖춘 극장이다. 1933년 법인을 설립하고 1935년 개관해 내년인 2025년에는 90주년을 맞이한다. 오랜 시간 동안 광주의 축을 담당했던 광주극장은 한국 극장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작품성 있는 예술, 독립영화들을 주로 상영하며 아직도 간판은 그림으로 게시돼 있다. 발을 들여놓으면 광주극장이 그 동안 품어온 세월의 향기를 가득 느낄 수 있다.


곳곳에 광주극장이 한국영화사와 걸어온 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배치 및 보존해 놨다. 누군가에게는 예술을 발견하는 공간, 누군가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소중한 장소일 테다. 1997년 광주극장에 입사해 현재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김형수 전무 이사는 하루하루 누군가에게 소중한 장소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다.


"97년도에 처음 극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지금까지 하게 될지 몰랐죠.(웃음) 산업이 그 사이 급변했고 광주극장도 문을 뻔한 위기가 많았습니다. 각 지역의 극장들이 사라지는 걸 보며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마음이 아파요. 왜 이런 공간이 지켜지지 못하고 사라질까 싶다가도,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아요. 이 공간을 두고 시민들은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 분들의 추억과 향수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 해나가야죠. 극장을 팔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광주극장이 최초 세워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시민들의 결집과 마음으로 지켜져온 공간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시민들 곁에서 열려있는 공간으로 남고 싶기 때문에 팔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김형수 전무이사)


짧지 않은 89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광주극장은 많은 위기를 겪어왔다. 2000년 이후 급변화된 영화 산업과 관람 문화 변화로 전통적인 극장 형태의 사라졌지만 광주극장은 여전히 시민들의 곁에서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해에는 광주동구청이 '광주극장의 100년 극장 꿈을 응원해 주세요'라는 타이틀로 고향사랑기부제 민간플랫폼 위기브(Wegive)와 함께 해당 지정기부 프로젝트를 시행한 결과, 5개월간 약 8500만 원이라는 모금액을 달성했다.


"왜 고향사랑기부금을 지원하려고 하냐고 묻는다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공간을 후대에 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광주극장이 지켜지길 바라는 이 마음을 동구청도 지지하고 있습니다.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꺾일 수 있기 때문에 고향사랑기부처로 지정한 것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동구청이 지원해 주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었으면 해요. 스크린, 사운드 등 장비와 극장 건물이 많이 낙후 됐어요. 최근에는 광주극장이 많은 연예인이 다녀가면서 더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전국에 많이 알려져서 관객들이 찾아오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성과라고 봅니다. 외국에는 100년, 200년 된 극장이 남아있는데 광주극장도 그런 존재가 되길 바라요. 모두의 극장, 전 세계의 극장으로 말이죠."(김희선 광주 동구 인구정책팀장)


ⓒ광주극장 내부
광주극장, 모두의 이야기가 쌓인 89년의 시간


최근에는 배우 이제훈이 유튜브 채널 '제훈씨네'를 통해 광주극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영상의 댓글에는 광주극장의 가치를 알리려는 광주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광주극장은 이전에도 많은 예능 프로그램, 영화 촬영, 대관 등을 꾸준히 해오긴 했어요. 하지만 시민들이 당시에는 '내가 알던 극장이 프로그램에 나왔네?'라고 인지만 했을 뿐이었다면 최근에는 시민들의 의식들 자체가 바뀐 것 같아요. 이런 공간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려는 관심이 생겼어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최근에 이제훈 씨가 유튜브 채널 '재훈씨네' 촬영하면서 극장의 이야기를 보여준 것이 반응이 좋았어요. 광주 시민들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이제 이게 고향사랑기부금으로 마음이 확대되고 있고요. 이런 공간은 자본이나 산업의 속도에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광주는 동구청장이 고향사랑기부금을 통해 지켜서 보존하자고 앞장서 주시니 고마운 마음이죠."(김형수 전무이사)


기획 상영과 이벤트를 매주 진행하고 있는 광주극장은 1년 내내 영화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는 10월 18일부터 11월 3일까지는 광주시네마테크가 '개관 89주년 광주극장 영화제'를 진행한다. 이 기간 동안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요',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가지 색-화이트' 등 영화상영, 강유가람 감독, 선수현, 김보라, 이서영 시인과 함께하는 시네토크 및 음악 콘서트로 영화제가 채워진다. 또한 국내 마지막 간판쟁이로 불리는 박태규 화백과 15명 관객이 직접 그린 손간판을 극장에 게시한다.


"극장이 나이를 먹는 것을 축하하고 시민들도 간판학교 등 커뮤니티를 통해 하던 교류를 영화제를 통해 한 번 더 얼굴 보는 자리를 마련해 이번에도 즐겁게 지내보려고 합니다. 이번에 손간판은 박태규 화백님과 관객들이 직접 추천하고 작업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김형수 전무이사)


광주극장과 동구청은 고향사랑기부금을 통해 조금 더 관객들이 쾌적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가장 급한 건 영사기와 스크린입니다. 영화관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빨리 개선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외에 시설, 외벽 등을 고쳐나가야죠. 이 곳이 겨울은 춥고 여름에는 더워요. 오래된 건물이라 냉난방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이 안되거든요. 예산 허용범위 안에서 시민들이 조금 더 쾌적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고쳐나가야죠. 더 바람이 있다면 지금 광주극장이 공식적으로 등록문화재 추진에 있는데 근처에 518 기록관, 518 민주광장 등이 있어요. 관광객이나 시민들이 광주극장을 찾아와서 여러 곳 둘러보며 지역 상권도 활성화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네요."(김희선 광주 동구 인구정책팀장)


김형수 전무이사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광주극장에 발걸음 하는 시민들, 그리고 이 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될 수 있길 바란다. 이 곳을 찾아주는 관객이 단 한 명일지라도 광주극장은 오늘도 문을 열고 내일을 맞이한다.


"이 극장은 관객 각각에게 다르게 정의되고 있을 겁니다. 항상 광주극장은 열려 있으니 이 공간에 쌓여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셔도 좋고, 여기에서 자기 이야기를 새로 써 내려가셔도 좋겠지요. 광주극장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니 관객들이 각자 기쁨을 발견해 가셨으면 해요. 그러려면 항상 운영되고 있어야겠죠. 사명감을 가지고 운영하겠습니다."(김형수 전무이사)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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