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90년대 영풍 지분 매집 시도로 첫 포문, 장씨 측 제안으로 분쟁 종결"
"2000년대 최씨 가문 내 '왕자의 난'…장씨 가문 도움으로 방어 및 안정화"
MBK 파트너스와 손잡고 최윤범 회장 측과 고려아연 지배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영풍이 과거 최 회장 측이 분쟁의 불씨를 제공했던 사례들을 제시한 뒤, 이번 분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했다.
영풍은 3일 보도자료를 내고 과거 영풍그룹 내 지배권 경쟁 사례들을 언급한 뒤, 두 사례 모두 최씨 가문이 촉발했고, 장씨 가문이 수습했다고 강조했다.
영풍에 따르면, 첫 번째 지배권 경쟁은 1993년에서 1996년 사이 최기호 공동 창업주의 장남이자 최윤범 회장의 부친인 최창걸 당시 고려아연 회장(현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주도해 벌인 분쟁이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설립 당시만 해도 공동 창업주간 우애가 돈독했다.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동업해 설립한 회사가 영풍이고, 영풍이 1974년 별도 법인으로 설립한 회사가 고려아연이다.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최상단에 영풍이 있는 이유다.
영풍의 지분은 1976년까지 장씨 가문 28.33%, 최씨 가문 26.97%로 양쪽이 거의 동일한 비율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기호 공동 창업주 별세 2년 전인 1978년부터 최씨 가문이 지분 일부를 정리하면서 영풍의 지분율은 장씨 가문 27.17%, 최씨 가문 12.88%로 벌어져 한동안 이와 유사한 비율로 유지됐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최기호 공동 창업주의 장남 최창걸 당시 고려아연 회장이 영풍 그룹 지배권 경쟁의 첫 포문을 열었다. 최 회장 일가와 고려아연 관계사들이 영풍 지분 매집에 나선 것이다.
1990년 장씨 가문 32.91%, 최씨 가문 21.05%이던 영풍의 지분율은 최씨 가문의 공격적인 지분 매집으로 1993년 장씨 가문 32.91% 대 최씨 30.38%로 그 차이가 2% 내외까지 좁혀졌다.
이에 당시 영풍의 경영을 맡고 있던 장씨 가문이 대응 차원에서 영풍 측 계열사를 통해 지분 확보에 나서면서 다시 일정 수준의 지분 격차를 유지하게 됐다. 영풍에 대한 양 가문의 지분율 차이는 1996년 장씨 가문 47.57% 대 최씨 가문 40.20%로 다시 벌어졌다.
결국 최씨 가문이 촉발하면서 시작된 영풍의 지배권 경쟁은 양측의 장내 지분 매집으로 인해 주가만 올라갔을 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에 당시 장형진 영풍 회장이 최창걸 고려아연 회장에게 주식의결권 신탁 계약을 제안했고, 1996년 2월 22일 양측이 해당 계약을 맺으면서 양 가문 사이 1차 지배권 분쟁이 종결됐다. 장씨 가문은 고려아연에 대한 의결권을 최씨 가문에, 최씨 가문은 영풍에 대한 의결권을 장씨 가문에 10년간 신탁하기로 한 것이다. 계약은 한 번 더 연장돼 2016년까지 유지됐다.
영풍이 거론한 두 번째 지배권 경쟁은 2009년 최씨 가문 안에서 벌어졌다. 최기호 공동 창업주의 장손이자 최창걸 회장의 장남인 데이비드 최 씨가 벌인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영풍정밀 경영권 분쟁이다.
영풍정밀은 펌프와 밸브 등을 주로 제조하는 고려아연의 계열사이지만, 영풍과 고려아연의 주식도 보유하고 있어 영풍그룹 지배구조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회사다. 현재 최기호 공동 창업주의 넷째 아들인 최창규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데이비드 최 씨는 2005년 서린상사(현 KZ트레이딩)와 부친 최창걸 회장의 영풍정밀 지분을 장내에서 매수해 최대주주 지위에 오른 뒤 지속해서 지분을 늘려왔다.
2009년 3월 사업보고서 기준 영풍정밀의 지분구조는 데이비드 최 23.94%, 나머지 최씨 가문 측 26.94%, 장씨 가문 측 23.79%였다. 최씨 측 지분 가운데 영풍정밀의 실제 경영을 맡고 있던 최창규 회장(당시 부회장)의 지분율은 4.44%에 불과했다.
당시 영풍정밀의 최대주주였던 데이비드 최 씨는 주주총회에서 일반적인 이사회 추천이 아닌 주주제안권을 통해 본인을 이사로 ‘셀프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사회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나머지 최씨 가문과 장씨 가문 측의 반대로 데이비드 최 씨의 영풍정밀 경영권 장악 시도는 불발됐다.
당시 데이비드 최 씨는 주총 표 대결에서 본인의 지분(23.94%)를 포함해 약 30%의 찬성표를 확보했다. 만약 지분 23.79%를 보유한 장씨 가문 측이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나머지 최씨 측은 본인들의 지분(26.94%)만으로는 데이비드 최 씨의 경영권 장악 시도를 막을 수 없던 상황이었다.
결국 최씨 가문 내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의 수습하는 데 장씨 가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영풍은 현재 진행 중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도 앞선 두 번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최씨 가문이 촉발하고 장씨 가문이 수습하는 사례가 될 것임을 주장했다.
영풍은 “최윤범 회장이 2022년 8월 한화의 해외 계열사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을 시작으로 우호세력 확보에 나선 것이 분쟁의 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유상증자 이후 같은 해 11월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6%를 ㈜한화, ㈜LG화학, 트라피구라 등과 상호교환 또는 매각했으며, 2023년 9월에는 현대차 그룹의 해외계열사인 HMG글로벌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또 다시 5%의 신주를 발행했다.
이를 두고 영풍은 “(최 회장 측이) 2022년과 2023년 두 해에 걸쳐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기주식 처분 등의 방법으로 무려 16% 상당의 지분 가치를 희석시키며, 우호세력을 확보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고려아연 주총에서는 최 회장 측이 사실상 국내의 우호세력에 무제한적인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가능한 정관 개안을 내놨지만, 영풍의 반대로 정관 개정은 무산됐다.
주총에서의 의결권 경쟁을 계기로 최 회장 측은 수십 년간 양사가 이어온 공동 영업과 원료 구매 등 공동 비즈니스를 곧바로 단절시켰다. 뿐만 아니라, 양사 ‘동업의 상징’이었던 서린상사의 이사회에서 영풍 측 인사를 배제시켰으며, 영풍 석포제련소의 아연 생산과 직결되는 ‘황산취급대행 계약’마저 끊기로 했다.
영풍은 이를 두고 “최씨 측이 동업 정신을 파기했다”며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대응에 나섰다.
영풍 관계자는 “두 가문에 의한 경영시대를 마무리하고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고려아연에 주식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선진 거버넌스 체계를 도입하고자 한다”며 “임직원들의 고용과 수익성이 검증된 신성장사업 추진, 국가산업발전 및 지역 경제 발전의 중추적 역할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