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성공적 작품일수록 무대화 기대치도 높아져
원작 메시지 훼손 없이 무대예술 특성에 맞춰야
올해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극장가에서 화제성이 가장 큰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할리우드 배우이자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세계적인 팬층을 거느린 톰 홀랜드가 주연으로 나선 것도 화제를 모았지만, 줄리엣 역할에 흑인 여성 배우 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의 캐스팅이 더 큰 화제였다.
톰 홀랜드에 비해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리버스 역시 BBC 코미디 시리즈 ‘배드 에듀케이션’에 출연했고, 여러 차례 연극 무대에 선 연극 배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캐스팅을 두고 “원작은 훼손한다”거나 “작품의 몰입감을 방해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인종 차별성 비난을 쏟아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톰 홀랜드에겐 냉철하면서도 긍정적인 연기 평가가 나온 반면, 아메우다 리버스에겐 인종차별적 공격을 견뎌내고 무대에 선 인내심만 거론되기도 했다.
매우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그만큼 원작을 둔 작품을 대하는 대중의 시선은 매우 까다롭고 예민하다. 물론 새로운 해석을 기대하는 관객들도 있지만, 이미 원작을 통한 이미지와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자신이 상상했던 활자 속 세계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좋아하는 캐릭터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예의주시하고, 원작의 정신이 훼손될까 우려하며 무대를 지켜보기도 한다. 특히 원작이 성공적인 작품일수록 관객의 기대치는 더 높아지기 마련이다.
뮤지컬 ‘맥베스’(서울시뮤지컬단)에서 각색과 대본을 맡은 김은성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워낙 원작의 완성도가 높아서 아무리 잘 고쳐도 원작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없다. ‘맥베스’ 역시 인류 문화사가 남긴 명작이다. 굉장히 유려한 대사들과 촘촘한 서사로 잘 짜여있어 욕먹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자신감을 갖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대 이 극장에서 뮤지컬로 새롭게 지금의 관객들을 만나면서 각색 전략을 ‘왕실 누아르’로 잡고 장르적 뮤지컬로 탈바꿈시켰다”고 말했다.
실제로 ‘맥베스’는 첫 공연을 매진으로 시작해 공연 막바지 4회차를 추가로 매진시켰고, 인터파크 관람객 평점은 9.0점을 기록했다. 초연의 흥행으로 1년 만에 재연을 확정, 지난 12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고전의 무게감을 덜어내면서도, 고전 특유의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평이다.
반면, 무리한 각색으로 혹평을 받은 작품도 있다. EMK뮤지컬컴퍼니는 2010년 ‘몬테크리스토’ 초연 당시 ‘원작 훼손’이라는 뼈아픈 평까지 들었지만, 시즌을 거듭하면서 꾸준한 변화와 수정을 통해 올해 여섯 번째 시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작품은 19세기의 대표적인 프랑스 작가이자 ‘삼총사’로도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초연 당시 ‘몬테크리스토’는 대극장용 뮤지컬인 만큼, EMK뮤지컬컴퍼니 특유의 화려한 의상과 세트를 내세웠지만, 원작 소설의 방대한 내용을 압축하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부 설정과 에피소드가 변경되면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백작의 복수 대상과 방법,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등이 원작과 다르게 묘사되며 원작 훼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원작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복수 파트’를 단 3분의 노래 안에 해치우는 ‘대담한’ 전개에 비판이 쏟아졌다. 오죽하면 ‘3분 복수’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한 공연 연출가는 “일각에서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쉽게 가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선으로 작품을 만든다면 열이면 열 실패한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제대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제작자라면 오히려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검증된 원작을 각색하는 것이 더 고된 작업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고전의 경우는 각 작품이 갖는 특성과 그 작품의 독자가 가진 특성까지 파악해야 한다. 만약 원작의 서사를 따르고자 했을 경우 시대착오적 요소는 최대한 시대에 맞게 다듬는 작업을 해야 하고, 전근대적인 대사나 캐릭터나 설정도 현대적으로 바꾸는 등의 작업도 필요하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의 시선에 맞춰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최근 작품을 무대화하더라도, 그것이 무대로 옮겨졌을 때 어떠한 효과를 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뮤지컬이나 연극은 소설과는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적절한 각색이 필요하다. 원작의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무대예술의 특성에 맞게 이야기 구조나 장면 구성, 등장인물 등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