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도’ 했지만 비난 휩싸인 ‘원경’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는 사극도 ‘요즘’ 시청 방식에 발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더욱 엄격해진 잣대, 그리고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정통 사극도, 퓨전 사극도 고민을 거듭 중이다.
의미 있는 시도에, 중·장년층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장르로 여전히 안방극장의 ‘인기 장르’가 되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호평을 받으며 ‘긍정적인’ 성과를 남기는 것이 쉽지는 않다.
tvN·티빙 ‘원경’이 지난 11일 최고 시청률인 6.6%를 기록하며 종영했지만,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시청률은 5% 안팎으로 ‘무난’한 수준이었지만, ‘화제성’은 그 어느 작품보다 컸던 것. 이 작품은 남편 태종 이방원과 함께 권력을 쟁취한 원경왕후. 왕과 왕비, 남편과 아내, 그 사이 감춰진 뜨거운 이야기를 담았다. 기존의 영화, 드라마가 보여주던 이방원-원경의 서사와 달리 그들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방송 전부터 이 새로운 시도에 여러 시선이 이어졌었다.
결국 그 화제가 부정적인 이슈로 연결되며 방송 내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우선 tvN·티빙 동시 공개로 시청자들을 만난 ‘원경’은 티빙에서만 초반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시청자들을 만났는데, 이때 ‘노출이 지나치다’는 비난을 받았다. 극의 흐름상 불필요한 노출이었다는 의견이 나오던 중, 대역 배우의 연기를 CG(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화제성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싸늘한 반응까지 이어졌었다.
종영 이후에도 ‘원경’의 ‘역사 왜곡’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심용환 역사학자가 한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이걸 ‘퓨전 사극’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한 것인가 싶다. 용어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차용을 했을 뿐이지 역사적 사실과는 상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경’의 미술 장치가 거슬렸다며 “세트가 예쁘고 화려한데 문제가 뭐냐면 너무나 일본풍”이라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배우 차주영은 종영 인터뷰에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빈 부분들은 ‘모든 것’을 동원해 채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고증을 바탕으로 하되, ‘원경’만의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노출 논란을 언급하며 차주영은 “(노출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작품이기 때문에 좋은 시도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혹여나’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료 속 ‘빈 부분’들을 ‘원경’만의 시선으로 채워나가는 작품이었지만, 역사라는 뿌리가 있었던 만큼 현장에서 모두가 머리를 맞댔다고 말해 그 치열했던 과정을 짐작케 했다.
차주영의 언급처럼, 퓨전 사극이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 사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보는 넘치고, 전문가들의 발언 또한 전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 ‘조심스럽게’ 접근을 하고 있음에도 ‘논란’을 피하는 것이 더욱 쉽지 않아졌다는 것을 ‘원경’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상상력을 최대한 배제하는 정통 사극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ㅇ낳다. 퓨전 사극과 마찬가지로 빈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과정에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는 사례가 없지 않으며 ‘의미’를 넘어, ‘흥미’까지 담아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도 안고 있다.
김영조 KBS 드라마 센터장은 최근 열린 2025 KBS 드라마 기자간담회에서 대하 사극은 손실이 나더라도 진행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치면서도 “예전에는 세트장에서 배우들의 연기 위주로 촬영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요즘 대중은 비주얼과 직접적인 표현을 중시한다. 전쟁 장면을 비롯해 ENG 촬영을 더 많이 해야 한다”라고 시청자들의 달라진 요구를 짚었다.
사극은 꼭 필요한 장르로 여겨진다. 우리네 역사를 영화, 드라마를 통해 흥미롭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재미는 물론, 잊힌 역사 또는 인물을 재조명하는 ‘긍정적인’ 역할까지. 사극의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이 한국 콘텐츠를 주목 중인 상황에서, 사극이 활발하게 제작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크게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사극이 앞으로도 이어지기 위해선 작품과 실제 역사를 구분해서 보는, 시청자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창작자도, 시청자도 좀 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해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