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연극계는 창작과 실험극의 산실로 여겨졌다. 하지만 극장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곳에서 상업 공연이 중심축을 이루면서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연극은 상대적으로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공연계의 다양성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를 낳았다. 이 같은 상업화 속에서 연극 페스티벌은 실험극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학로에 위치한 소극장 혜화당은 다양한 페스티벌을 통해 실험극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올해 10회째를 맞이한 ‘단단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단단페스티벌’은 짧을 단(短), 단련할 단(鍛)을 뜻하는 이름처럼, 응축된 이야기와 실험정신으로 무대를 채우는 단막극 전용 연극제다.
‘단단페스티벌’은 지난 2일 시작해 내달 4일까지 5주간 진행되며, 총 10개 극단이 참여해 매주 2편씩 릴레이 형식으로 무대를 이어간다. 참여작의 면면을 보면 고전 희극에서부터 블랙코미디, 청소년극, 심리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사실 연극 페스티벌은 그 자체로 창작자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더해 ‘단단페스티벌’은 실험 정신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예술가들에게 상업적 성공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펼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소극장 혜화당은 단단페스티벌 외에도 ‘SF연극제’ ‘미스터리스릴러전’ ‘123페스티벌’ 등 특정 장르나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페스티벌을 꾸준히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실험극 생태계 구축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스티벌이 단순한 공연 기회 제공을 넘어, 다채로운 형식과 주제의 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연극계 전체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페스티벌이라는 장을 통해 예술가들 간의 교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실험극들이 대중적 관심과 화제를 모으는 사례도 있다. 지난 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랑데부’ 연출가 Yossef K. 김정한은 “누군가는 ‘랑데부’를 실험극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실험이 아니라 진심이다. 다만 다른 사람이 해보지 않은 것을 조금 해보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는 ‘랑데부’가 실험극과 상업연극이 ‘대립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김정한 연출은 미국과 영국에서 실험극부터 셰익스피어, 상업 뮤지컬까지 폭넓은 작품을 선보여온 아방가르드 연출가다. 작품 역시 패션쇼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직사각형의 긴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관객석을 배치하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극장의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면서도 그 내용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중력이라는 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며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보편적 감정을 다룬다.
‘랑데부’와 유사한 좌석 구성의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도 마찬가지다. 미국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1923년, 1934년, 1943년까지 10년을 주기로 일어난 사건을 독립된 이야기로 선보이는 옴니버스극으로, 관객들이 직접 목격자가 돼 관람할 수 있는 구조다.
이 두 실험극의 성공은 실험극에 대한 관객의 잠재적 수요와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한 연극 관계자는 “랑데부‘ ’카포네 트릴로지‘는 실험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일반 대중에게도 접근성이 좋은 수작”이라며 “참신함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작품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연극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실험극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 기반 확보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관계자는 “혜화당의 페스티벌은 서울시 임대료 지원 사업인 서울형창작극장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운영이 가능한 면이 있다”면서 “공공 지원 제도는 소극장의 운영 부담을 덜어 실험극 등 창작에 있어서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어 주는 셈이다. 연극계가 창의적으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유지하기 위해선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들이 절실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