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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영화 너머 가요까지...팬덤 모으는 '퀴어 코드' [D:이슈]


입력 2025.04.22 08:42 수정 2025.04.22 08:42        이예주 기자 (yejulee@dailian.co.kr)

퀴어 코드는 이제 더 이상 마이너 장르의 전유물이 아니다. 케이콘텐츠(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으며, 국내 대중문화 전반에서도 퀴어 코드가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단순한 서사 장치를 넘어, 퀴어는 드라마·영화·가요 전반에 걸쳐 하나의 흥행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팬덤의 유입과도 맞물린다. 국내 콘텐츠가 넷플릭스, 디즈니+, 라쿠텐비키 등 해외 OTT 플랫폼을 통해 널리 유통되면서, 성소수자 이슈에 유연한 글로벌 팬층이 자연스럽게 유입된 결과다. 퀴어 코드가 '의도적인 장치'가 아닌 '당연한 감수성'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속에서, 산업 전반의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국내 퀴어 콘텐츠의 대중화 흐름은 드라마와 영화를 중심으로 먼저 가시화됐다. '시맨틱 에러', '대도시의 사랑법', '폭설' 등 퀴어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마니아층을 넘어 MZ세대 일반 시청자에게도 흥미롭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시맨틱 에러'는 흥행에 성공하며 공개 직후 왓챠 1위를 차지했고,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스핀오프 예능 '나의 계절에게: 봄, 박재판 편'과 극장판 '시맨틱 에러: 더 무비'가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 '아가씨' 또한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관객 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음에도 약 42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로 4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비비 '데레' 뮤직비디오

드라마와 영화 속 퀴어 코드는 이전에도 없진 않았다. 영화 '불한당'에서는 남성 간의 관계를 뚜렷이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팬들 사이에서 주인공의 관계를 두고 '브로맨스냐 로맨스냐'의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왕의 남자' 등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출연 배우들의 새로운 이미지가 부각돼 반사이익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과거에는 퀴어 코드가 상징이나 은유의 형태로 드러났다면, 최근에는 이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퀴어 서사가 '하위 텍스트'에서 '주제'로 발전한 것이다.


가요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비비의 싱글 '데레' 뮤직비디오는 여성 간의 미묘한 감정선을 다루며 퀴어적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은유와 상징을 통한 표현이 주를 이뤘지만, 이는 콘텐츠가 명시적인 퀴어 서사로 전환되는 흐름의 과도기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서인국과 안재현은 케이윌의 '이러지마 제발' 뮤직비디오가 재조명되자 지난해 '내게 어울릴 이별 노래가 없어'의 뮤직비디오로 약 12년 만에 재회하며 글로벌 팬덤의 열띈 반응을 얻었다.


더 나아가 직접적인 커밍아웃으로 또다른 화제성을 낳은 사례도 등장했다. 3월 캣츠아이의 멤버 라라는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고백했고, 팬들은 이를 지지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2021년 그룹 와썹 멤버 지애가 커밍아웃했을 당시 쏟아졌던 악성 댓글과는 대조적인 반응이다. 팬덤 내 인식이 불과 3~4년 사이 급변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반응은 대중문화 산업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의 퀴어 인식 변화와 맞물려 있다. 2000년 홍석천은 커밍아웃 직후 방송 활동을 중단해야 했지만, 뒤이어 등장한 '하리수'라는 스타 탄생과 더불어 퀴어 문화를 다룬 해외 콘텐츠의 유입은 국내 퀴어 콘텐츠의 생산과 흥행 가능성을 점차 확장시켰다. 여기에 케이콘텐츠의 글로벌화 흐름이 더해지며 퀴어 감수성은 가요계 전반으로까지 스며들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

퀴어 프렌들리 콘텐츠는 이제 화제성을 넘어서 실질적인 수익성과도 직결된다. '비의도적 연애담'은 일본 OTT 플랫폼 라쿠텐 비키에서 한국 드라마 부문 월간 1위를 차지했고, '선의의 경쟁'에 출연한 혜리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1000만 명을 돌파하며 글로벌 인기를 입증했다. 퀴어 콘텐츠를 중심으로 형성된 팬덤은 높은 충성도를 보이며, 이들이 창출하는 소비력은 콘텐츠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와 '옥씨부인전' 등 대중성을 노린 작품에 퀴어 감수성을 반영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으며, 가요계에서도 "She's that stunna Make you wanna swing both ways"(그녀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남자와 여자 모두 끌리게 만들어버려)라는 가사를 노래한 제니, 가요대제전에서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곡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 무대를 펼친 안유진과 이영지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퀴어 코드의 남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퀴어 코드가 단순한 마케팅 전략으로 소비될 경우 오히려 콘텐츠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 흥행 장치가 아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서사로서 퀴어가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작자들의 섬세한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예주 기자 (yeju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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