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선전으로 가파른 관중 증가
미온적인 집행부 행정력, 구단 태도
“프로야구 바깥에서 보니 700만 관중에 너무 도취됐다. 우리나라 야구 자체가 위기 속에 있다.”
한국 야구의 원로이자 현역 감독으로 활동 중인 ‘야신’ 김성근(70) 감독이 프로야구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김 감독의 발언은 프로야구의 현재를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야구인이라면 모두가 귀 기울일 조언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야구 선수들과 관계자 여러분이 힘을 합쳐야 한다. 안 그러면 어려운 시기가 온다”고 덧붙였다. 이말은 곧, 2000년대 프로야구를 강타한 '암흑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프로야구는 관중 폭발과 함께 최고의 프로스포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인은 역시나 전국구 인기구단으로 불리는 소위 ‘엘롯기’의 우승 때문이었다.
1990년 LG는 창단 첫 해 해태(옛 KIA)의 4연패를 저지하며 서울 연고팀으로는 최초의 우승반지를 차지했고, 이후 해태-롯데-해태-LG 순으로 우승자가 가려졌다. 결국 1995년, 한국 프로야구는 역대 최다인 540만 관중 동원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프로야구는 극심한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의 성공으로 야구팬들의 눈높이가 올라갔고,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로 팬들의 관심이 축구로 쏠렸다. 내부적으로는 ‘엘롯기’의 동반 침몰과 선수협 파동, 병역 비리 등의 고충을 겪었다.
관중은 매년 줄어들기만 했다. 1996년 449만 관중을 찍은 후 다시 400만명을 회복하는데 꼬박 11년이 걸렸다. 1999년 해체된 쌍방울은 평균관중 757명이라는 굴욕적인 숫자를 남긴 채 사라졌고, 롯데 역시 2003년에는 지금의 1/10 수준에 불과한 1910명만이 사직구장을 찾았다.
프로야구 제2의 르네상스는 2006년을 기점으로 다시 찾아왔다. 제1회 WBC에서 4강 신화를 쓴 한국 야구는 국제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후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출전하는 대회마다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관중의 가파른 증가세는 당연했다. 2007년 410만을 시작으로 525만→592만→593만→680만 등 수식 상승을 그리더니 올 시즌에는 역대 최다인 715만명의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다. 이 같은 야구 열기에 힘입어 지난해 9구단인 NC 다이노스가 창단했고, 10구단 출범까지 논의되는 상황이다.
그러면 여기서 되짚어봐야 할 점은 프로야구가 흥망을 거듭하는 동안 KBO(한국야구위원회)와 8개 구단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다.
1990년대 말 무수한 유망주들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자 KBO와 구단들은 ‘해외파 2년 유예제도’를 만들었다. 사실상 ‘나가려거든 돌아오지 못할 각오로 가라’라는 뜻이었다. 현재 고양 원더스에 몸담고 있는 정영일과 남윤성이 이 제도에 적용되고 있다.
선수협 출범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구단들은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괘씸죄에 걸린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 강병규가 트레이드되는 후폭풍이 일기도 했다. 반면, 줄어드는 관중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2007년부터 야구 붐이 다시 일기 시작했을 때에도 KBO와 구단들의 역할은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물론 지금의 야구 열기는 국제대회에서 선전한 선수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KBO와 각 구단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는 듯 보인다.
비합리적인 FA제도는 선수들 간의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을 야기하는가하면, FA 미아가 발생하는데도 이를 개선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구단들은 연말 재계약 협상 때 선수들과 얼굴 붉히는 경우도 있으며, 납득하지 못한 선수들이 연봉조정신청을 내면 KBO는 어김없이 구단의 손을 들어주곤 한다.
야구장 관람 환경도 마찬가지다. 문학구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장들은 미국, 일본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지만 입장료의 인상은 관중 증가와 궤를 함께 하고 있다. 물론 낙후된 몇몇 야구장의 시설은 최근에야 리모델링 또는 신축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 또한 성사되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고착화되어가고 있는 리그 판도 역시 흥행 하락 요소임에 분명하다. 삼성과 SK는 벌써 3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해 롯데, 두산, KIA만이 4강 경쟁을 펼칠 뿐이다. 넥센-LG-한화 팬들은 가을 야구를 보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면서 각 구단들만의 개성도 없어졌다. 김성근식 데이터 야구, 김경문표 발야구, 로이스터의 공격 야구는 사라진지 오래며 8개 구단 모두가 같은 색을 내고 있다. 류현진-김광현을 끝으로 괴물신인은 찾아볼 수 없게 됐고, 각 구단들은 ‘전국구 스타’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프로야구가 자생력이 없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와 축구 등 외부환경요인에 대해 이렇다 할 대처를 하지 못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LA 다저스와의 계약을 진행 중인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박찬호만큼의 파급력을 지닌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연착륙한다면, 프로야구의 암흑기는 보다 빨리 다가올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의 말처럼 프로야구는 위기와 마주해있다. 류현진으로 메이저리그 바람은 불기 일보직전이며, 10구단 창단을 촉구하는 선수협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다. 암흑기의 시작을 알렸던 90년대 말과 너무도 흡사한 모양새다. 이제는 KBO와 각 구단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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