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국정원·NLL' 이유있는 침묵
야권 사과 입장표명 사과요구에 '선긋기' 일관
'국정원'은 수사중인 사건 'NLL'은 여야 문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서해북방한계선) 대화록’ 공개를 둘러싼 정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행정부인 정부의 입장이나 조치가 어느 한 정당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줄 경우, 자칫 입법부의 독립성과 삼권분립 원칙 훼손이라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에선 본의 아니게 두 사안과 ‘선긋기’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야권에선 끊임없이 대통령의 입장 표명과 사과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의 빌미는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6일 대선을 사흘 앞두고 치러진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국정원 여직원 사태와 발생한 여성 인권침해에 대해서 한마디도 지금 말이 없고, 또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를 공격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원 여직원을 변호하면서 민주당을 범죄 집단으로 치부했고, 검찰 조사에 따른 국정원의 선거법 위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는 무리가 따른다.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은 경·검찰 지휘권이 없는 공당의 대선 후보였지만, 현재는 경·검찰이 소속된 행정부의 수반이다. 결국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은 검찰 수사에 대한 외압, 또는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이 경우 대통령 스스로 수사기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새 정부는 정보기관이나 사정기관, 언론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분명하고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앞서도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었던 정치쇄신의 세부 과제로 검찰과 경찰,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권력기관의 독립성 확보를 내세운 바 있다.
아울러 ‘NLL 대화록’의 경우, 법적으로 대통령 지정 기록물 공개는 국회의원 재적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을 때 가능하다. 현재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원내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원칙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다를 바 없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시민단체인 ‘선진화시민행동’ 주최 행사에 참석해 “이(NLL) 문제는 당시 노무현 정권에서 책임을 졌던 사람들이 명확히 밝히면 될 것인데, 국민에게 의구심만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박 대통령은 ‘NLL 대화록’ 논란과 관련해 야당과 참여정부 인사에게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을 뿐, 정부와 국정원에 대해선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정쟁은 국회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이 당시에도 유효했던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4일 이와 관련, “지금 국회에서 이 부분에 대해 논의가 되고 있는데, (청와대가 대화록을 공개해라, 마라) 하면 (오히려) 청와대가 잘못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어 과정에 대한선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면서 “그 문제는 이보다 더 활발할 수 없을 정도로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좀 지켜보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1일에도 정부의 입장을 밝히라는 야권의 요구에 대해 “엄연히 정치의 중심이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그런데) 자꾸 청와대에서 ‘뭘 해결하라’, ‘결단을 내려라’, ‘입장을 얘기하라’ 하면 여의도가 작아진다. 국회가 스스로 작아진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NLL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볼 것인지, 대통령기록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만큼, 청와대가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열람을 허용한 NLL 발췌본이 어디로 분류되느냐에 따라 법적 해석이 갈리기 때문이다.
앞서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3일 청와대에 대한 국정원의 수시보고 의혹과 관련해 “현 정부에서 국정원의 수시보고는 없다”고 밝혔다. 발췌본은 공공기록물이라는 국정원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여당 의원들이 발췌본을 열람하고, 발췌본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한 것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기 때문에, ‘NLL 대화록’ 건에 대한 판단은 수사기관과 사법부로 넘어갔다. 현 상황에서 청와대가 나선다고 해도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이처럼 국정원 사태와 ‘NLL 대화록’ 논란 모두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법적 절차에 따라 원내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모든 수사와 재판이 종결된 뒤에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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