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탈북자 도와달라" 총영사관 "알아서 들어와라"
<단독>중국 억류된 재탈북자 도움요청 음성파일 공개
절박한 구조요청에도 주중 총영사관측 늑장대응 생생
지난 1월 탈북자 신분으로 북한으로 돌아가 기자회견까지 한 젊은 부부와 10개월 된 딸 등 일가족이 재탈북했다가 중국 연변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광호 씨 일가족 5명을 포함한 탈북자들이 지난 8일 체포되기 전 중국에서 우리 공관에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있으나 사실상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데일리안'이 15일 입수한 김희태 북한인권개선모임 사무국장과 주중 베이징 총영사관 측의 통화 녹취파일에선 김 사무국장이 영사관측에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으나 영사관측의 성의없는 답변이 생생히 담겨 있다.
두 사람의 통화 녹취파일은 김 사무국장이 도움을 요청하는 말로 시작된다.
"지금 중국에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이 7명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대사관에서 좀 도와줄 수 없을까요."
"네, 전화 돌려드리겠습니다."
"지금 중국에 탈북자 7명이 도움을 바라고 있습니다. 대사관에서 좀 도와줄 수 없는지요."
"아... 공관까지 들어와야 도와줄 수가 있는데요... 우선 알아서 들어오시면... 밖에선 도와줄 도리가 없으니까..."
"공관 주변에 공안이 감시하고 있어서 위험합니다. 전화로 말씀하시기 어려운 건 알지만, 비선라인으로라도 좀 도와줄 수 없을까요. 부탁합니다."
"그럼... 한번 여쭤보고... 전화를 드릴게요."
......
녹취 파일을 들어보면 도움을 요청하는 김 사무국장은 다급한 나머지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알 수 있는 반면 영사관측은 몹시 난처해하면서도 상당히 무성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묻는 목소리는 너무 담담해서 아무런 기대를 걸지 못하게 만든다.
더구나 통화 상대방의 소속과 이름, 연락처를 재차 물어보고 전화를 끊은 영사관측에선 이 전화통화 이후 다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을 담당해야 하는 공관의 도움은 커녕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체포된 탈북자들 중에는 탈북해 남한에 정착했다가 북한으로 들어가 기자회견까지 한 김광호·김옥실 부부와 10개월 된 딸, 아내 김옥실 씨의 동생 2명 등이 포함돼 있다.
김희태 사무국장은 “영사관 근처에 사복경찰이 배치돼 있는 상황에서 언제 적발될 지 몰라 도움을 요청한 것인데도 영사관측은 ‘공관 밖에 있는 상황에서는 도와줄 수 없으니 일단 어떻게든 (공관 안으로) 들어오라고’만 말했다”고 전했다.
김 사무구장은 처음 도움을 요청하는 탈북자 가운데 김광호 씨 일가족이 포함된 줄은 몰랐으나 결국 우리 공관의 무관심 속에 탈북자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을 북한에 넘기는 결과를 낳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지난 2009년 한국에 입국한 뒤 부인과 딸과 함께 전라남도 목포에서 생활해 오던 중 재입북해 2013년 1월 북한 매체를 통해 남한 사회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김 씨는 기자회견에서는 “저희 부부는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남조선 땅에서 무진 애를 썼으나 사기와 협잡,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험악한 세상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며 남한 사회를 비난했다.
이후 김 씨 부부는 자신들이 살던 함경북도 농촌으로 보내졌고, 넉넉하지 못하게 살다가 김 씨가 “남한에서 잘 먹었다”는 발언을 한 것이 빌미가 돼 체포돼 보위부 감옥에 갇히게 됐다.
감옥 안에서 원래 결핵이 있던 김 씨의 병세가 심해지면서 이들은 재탈북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이때 김 씨 아내의 남동생과 여동생까지 동반해 지난달 26일 국경을 넘었다가 12일만에 중국 공안에 체포된 것이다.
앞서 김 씨 부부의 첫 탈북을 도왔던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회 회장은 “그동안 중국에서 두번이나 공안에게 체포될 뻔 했던 김 씨 일가족을 구했지만 결국 체포됐다”며 “이들의 탈북 사실을 알게 된 북한측이 체포조를 보내서 중국 공안의 협조를 얻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북소식통은 “김광호 씨의 경우 중국 공안의 상부 지시가 있어서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보위부에서 수일 내 중국으로 나올 것이란 전언이 있는 만큼 다시 북한 측으로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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