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흔들, 자칫 농구도 축구 꼴?
세대교체 지지부진, 주전들 노쇠화 ‘여론 뭇매’
중국축구처럼 '대국민사과' 전철 밟는다 우려도
중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농구 최강이다.
아시아무대에서의 위상도 남다르다. 아시아선수권에서만 지난 대회를 비롯해 무려 15회나 우승, 최다우승국의 위엄을 자랑한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도 꾸준히 출전, FIBA랭킹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11위다.
개인종목에 비해 단체종목에서는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국이 구기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제적인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종목이 바로 농구다.
뛰어난 성적만큼이나 중국의 농구인기는 뜨겁다. 자국 프로농구(CBA)는 물론 NBA 인기도 상상을 초월한다. 농구경기장은 언제나 만원사례다. 야오밍 같이 CBA출신으로 NBA에서도 성공한 월드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아시아선수권에서 충격에 빠졌다. 조별리그 1라운드에서 이란과 한국에 2패를 당하며 체면을 구긴 것. 최약체 말레이시아를 91점차 대파하고 12강에 오르긴 했지만, 디펜딩챔피언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뒤였다.
당초 한국-중국-이란 등 아시아선수권 역대 우승팀 3강이 몰린 C조가 죽음의 조로 분류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이 2패를 당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특히, 한국과의 1차전에서 59-63으로 역전패 당한 것은 중국대표팀 1진이 나선 대회에서는 2002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무려 11년만이었다.
한국전 패배 직후 중국 언론과 네티즌들은 일제히 자국대표팀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농구팬들에게 한국전 패배란, 굳이 비교하자면 축구에서 한국 팬들이 중국축구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나 비슷했다. 더구나 이란전마저 19점차 대패, 중국 농구계의 당혹감은 위기의식으로 바뀌었다.
한국전 패배 때만 해도 단순히 '방심으로 인한 실수' 정도로 취급했지만 이란전마저 힘 한번 못 써보고 무너지자 상황이 심각해졌다. 우승은 고사하고 이대로라면 8강 진출도 장담할 수 없다는 낯선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하고 최근에는 평가전에서 태국에 1-5로 참패하며 ‘대국민사과’까지 했던 남자축구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 이번 대회에서 나서는 중국의 전력은 여러모로 정상이 아니었다. 아시아농구 최강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011년 야오밍의 은퇴를 기점으로 중국농구의 위상은 조금씩 하락세를 그렸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야오밍을 앞세워 8강에 올랐지만,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조별리그에서 5전 전패, 쓸쓸하게 보따리를 쌌다.
세대교체 실패로 인한 전력약화도 두드러진다. 류웨이, 왕즈즈, 왕스펑, 주팡위 등 10여년 넘게 중국대표팀을 이끌어왔던 주역들을 대체할 새로운 세대의 성장이 지지부진하다. 노쇠화가 두드러지는 왕즈즈와 주팡위는 당초 이번 대표팀 합류를 놓고 끝까지 갑론을박이 있었고, 주전가드 류웨이는 부상으로 불참했다. 에이스 이젠롄도 허벅지 부상에 시달리며 한국전 이후로는 경기에 나서지 않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이란전에서 연이어 50점대의 빈공에 허덕였다. 이젠롄에 대한 높은 의존도도 문제였지만, 류웨이가 빠진 가드진의 공백도 뼈아팠다. 백코트 대결에서 기동력의 한국과 파워의 이란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국전 역대 최소득점(59점), 이란전에서 역대 최소득점(51점), 전반 최소득점(24점) 등 이번 대회에서만 각종 불명예 기록을 한꺼번에 경신하는 수모를 당했다.
지휘봉을 잡고 있는 그리스 출신 파나요티스 야나키스 감독은 이번 대표팀에 첸장화, 왕저린 등 젊은 선수들을 대거 발탁했지만 아직까지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 중국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야나키스 감독이 아직 아시아농구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물론 중국이 이대로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섣부르다. 2라운드에서는 카자흐스탄, 바레인, 인도 등 비교적 약한 상대들을 만나는 데다 8강 토너먼트 이후부터는 우승경험이 풍부한 중국의 노련미가 다시 빛을 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농구의 시행착오와 방황은 16년만의 아시아정상 탈환을 노리는 한국농구에는 분명한 호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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